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윤창호 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음주운전이 줄지 않고 있다. 이달에만 6일 햄버거 가게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6살 아이가, 지난 9일엔 인천 을왕리에서 치킨을 배달하던 50대 가장이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했다.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좀처럼 줄지 않는 배경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 달간 판례만 분석해 봐도 실형 선고율은 0.8%에 불과했다. 113건 중 실형은 1건한국경제신문이 지난 7월 15일부터 8월 19일까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선고한 음주운전 형사사건 1심 판결문 113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벌금형은 62건, 징역형의 집행유예는 50건이었다. 실형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
법원은 음주운전을 했어도 실제 사고까지 이어지지 않았거나 피고인이 반성하면 이를 감경요소로 보고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술에 취한 채 운전대를 잡은 것 자체가 살인행위'라는 국민감정과 실제 판결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피고인 A씨는 지난 4월 혈중알코올농도 0.226%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6㎞를 운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행법상 운전면허 취소 수준의 혈중알코올농도(0.08%)보다 3배 높은 수치였다. 또 A씨는 2019년 3월에도 음주운전으로 한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법원은 또다시 벌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또다시 음주운전을 했고 혈중알코올농도의 수치가 매우 높아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교통사고까지 발생하진 않아 벌금형으로 정했다" 판단했다.
또 다른 피고인 B씨는 이미 수 차례 음주운전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는데도 지난 5월 혈중알코올농도 0.094%의 상태에서 서울 중구에서 강남까지 또다시 운전했다. 법원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음주운전 사건이 실제 교통사고 발생으로 이어지지 않은점, 피고인의 연령 등을 고려했다"라고 설명했다. "동승자 처벌도 강화해야"지난해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음주운전 단속기준(혈중알코올농도)은 기존 0.05%에서 0.03% 이상으로 강화됐다. 같은 법 148조 등에 따르면 음주운전 금지규정을 2회 이상 위반한 '상습범'은 2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살인죄의 법정형 하한선이 징역 5년이란 것을 감안하면 형량 자체가 낮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교통법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엘앤엘 의 정경일 변호사는 "법정형이 아무리 높아도 그만큼 선고가 안 나면 유명무실"이라며 "술 먹고 운전대를 잡는 사람은 언젠가 인명 사고를 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사회가 음주운전을 처벌하는 이유는 부상이나 사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며 "사고가 안 났다고 처벌을 약하게 하는 것은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승자의 처벌 역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형법 32조는 방조죄를 처벌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방조라는 것은 음주운전을 사실상 도와주는 것을 뜻한다"며 "아직까지는 '이렇게 가면 단속 안 걸린다'고 말하는 등 음주운전을 적극 권유하는 경우에 한해 처벌하고 있지만 그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 20일 음주운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 오는 11월 17일까지 음주운전 집중 단속 기간을 연장하고 매주 2회 이상 취약시간대 일제 단속을 하겠다고 밝혔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