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 콕 집어 자르고 교정…'유전자 가위' 진화는 계속된다

입력 2020-09-18 17:16
수정 2020-09-19 02:17
고혈압, 당뇨 등 만성 질환이나 일부 암은 유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잘라내 질환 대물림을 막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세상에 등장한 지 20여 년이 흘렀다. 가위의 절단 성능(정확도)도 차츰 진화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는 미생물로부터 분리한 천연 가위(제한효소)와 생명공학 기술로 만들어낸 인공 가위 두 가지가 있다. 인공 가위는 1세대 ZFN(징크 핑거 뉴클레아제)과 2세대 탈렌을 거쳐 현재 3세대 ‘크리스퍼-카스9’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크리스퍼-카스9은 가위 역할을 하는 단백질 ‘카스9’에 자를 부위를 안내해주는 ‘가이드 RNA(리보핵산)’를 붙인 것이다. 카스 단백질은 카스9, 카스12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카스 종류에 따라 가이드RNA도 맞춰서 바꿔야 유전자가 제대로 잘린다.

한국연구재단은 김형범 연세대 의대 교수팀이 ‘점돌연변이’ 교정을 위한 유전자 가위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다고 최근 밝혔다.

유전자의 본질인 DNA(데옥시리보핵산)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네 가지 염기가 두 개씩 30억여 개 쌍(bp)을 이뤄 꼬인 이중나선 구조로 돼 있다. 이들 염기 특정 부위에 변이가 일어나는 것을 점돌연변이라고 한다. 유전질환의 대부분이 점돌연변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퍼-카스9 유전자 가위는 특정 염기를 절단할 수 있으나, 염기를 바꾸는 ‘치환’까지는 기술적으로 어렵다. 치환이 가능한 ‘염기교정 유전자 가위’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배경이다. 염기교정 유전자 가위는 특정 bp의 시토신(C)을 티민(T)으로 바꾸거나, 아데닌(A)을 구아닌(G)으로 대체한다. 2016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처음 개발했다. 다만 가위를 써 1개 염기만을 바꿔야 하는데, 2개 염기가 한꺼번에 바뀌는 경우가 많아 이를 방지하는 기술이 중요했다.

김 교수팀은 염기 교정 유전자 가위의 효율과 절단 결과물에 대한 빅데이터를 확보한 뒤 인공지능(AI) 딥러닝 기법을 적용해 ‘교정 결과 예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2만3479개의 점돌연변이 유전질환 가운데 염기교정 가위로 유전자 편집을 시도해볼 수 있는 낭포성 섬유증 등 3058개 질환을 선별했다. 낭포성 섬유증은 기관지 내 점액 분비선에 이상이 생기거나 췌장 소화 효소 분비가 잘못돼 폐와 소화기관 등이 망가지는 유전질환이다.

연구팀 관계자는 “점돌연변이 유전질환 교정은 원하지 않는 위치에서 가위의 작동(편집) 확률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최적의 유전자 가위를 선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 성과”라고 설명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대식 전임연구원과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김진수 수석연구위원, 임가영 선임연구원 공동 연구팀은 최근 DNA의 시토신 염기 하나를 우라실(U) 염기로 바꾸는 ‘Cpf-1 염기 교정 유전자 가위’ 기술의 정확성을 처음으로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가위 작동 전후 염기 분포를 지도로 그려 분석하는 ‘유전체 시퀀싱’ 방법을 썼다. 이 가위는 2018년 중국 상하이기술대 지아첸 교수팀이 처음 개발했지만 정확성이 규명되지 않았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생물학 분야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