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 떨어진다"…강남 부동산 시장서 벌어진 희한한 일

입력 2020-09-19 07:25
수정 2020-09-19 12:44
신혼부부 김모씨(38)는 최근 서울 강남에서 집을 사려다가 특이한 매물을 발견했다. 호가가 21억~22억원대인 서초동의 한 단지에서 시세보다 약간 싼 20억원 후반대 매물을 거래하려고 했더니 중개사가 값이 날짜별로 다른 매물이라고 귀띔해준 것이다. 중개사에 따르면 이 매물을 11월까지 매수할 경우 20억9000만원, 12월 중순에 계약을 맺을 경우 21억2000만원, 12월 말엔 21억4000만원의 값을 치러야한다.

김씨는 “집주인이 올해 안에 집을 팔면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최대(80%)로 받을 수 있어 매도를 빨리하고 싶다고 들었다”면서도 “어차피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더 뛸 것으로 봐 시기별로 가격을 다르게 매겨 집을 내놨다고 하더라”고 황당해했다.

1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서울 강남권 부동산 시장에서 기간별로 값을 차등화한 매물이 나오고 있다. 잔금 지급일자가 늦춰질수록 값을 올려받는 형태의 계약하려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본 매물들이다.

반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시기별로 값을 더 높게 받겠다고 요청하는 집주인들이 간혹 있다”며 “잔금에 대해 명목상 이자를 매기는 형식으로 계약을 하는데, 예컨대 일자별로 이자를 수백~수천만원씩 매겨 이를 입금할 경우 잔금일자를 뒤로 미뤄주는 방식으로 가격을 조금씩 더 높여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수요가 늘자 시장 분위기가 ‘집주인 우위’로 형성될 때 나오는 ‘호가 높이기’ 현상이 새로운 방식의 계약 형태로 변모한 것이다. 실제 서울 강남지역에선 지난 8월 한 달간 손바뀜한 아파트 10가구 중 6가구가 신고가를 갈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삼성동에서 손바뀜한 14건 중 9건, 청담동 4건 중 3건이 고점을 경신했다. 압구정동 ‘한양2차’는 지난달 전용 175㎡가 40억원에 거래되며 전고가보다 3억2000만원이 뛰었다. 도곡동 ‘대림아크로빌’도 이달 초 전용 130㎡가 19억20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대치동 ‘은마’, 잠실동 ‘트리지움’ 등도 신고가 행렬에 동참했다.

이에 따라 호가가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18억8000만원에 거래됐는데, 현재 호가는 이보다 1억~2억원 가량 높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내년 하반기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시행돼 매물이 늘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면서 “매물이 없어 호가는 내려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강남지역 아파트 거래량이 줄어들더라도 가격은 떨어지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거래량도 여전히 느는 분위기다. 서초구의 지난 7월 거래량(783건)은 5월(590건)과 6월(725건)에 비해 늫었으며, 송파구도 5월(345건), 6월(987건), 7월(1524건)으로 다달이 급증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주택을 여러채 보유하는 것에 대해 세부담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자 사람들이 다주택을 처분하고 입지가 우수한 ‘1급지’에 똘똘한 한 채만 남기거나 매입하려 하면서 강남의 고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값이 계속 뛰고 있다”며 “매물은 극도로 적으니 시장에서 매수자끼리 경쟁이 붙으면서 한동안 신고가가 경신되는 사례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