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교수 "간이식 성공률 98%…최고의 팀워크 덕분"

입력 2020-09-17 17:46
수정 2020-09-18 03:09
“생체 간이식 종주국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가게 됐다.”

2000년 7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이식학회에서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사진) 발표를 본 해외 석학들의 반응이었다. 당시 이 교수는 살아있는 기증자 두 명의 간 일부를 떼어 환자 한 명에게 이식하는 2 대 1 생체간이식 수술을 보고했다. 세계 첫 시도였다.

20년 뒤인 지난 7월 이 교수가 이끄는 간이식팀은 7000건의 이식수술을 성공하는 대기록을 썼다. 세계 최다 기록이다. 서울대 의대를 나와 아산의료원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이 분야 최고 석학 반열에 올랐다. 그는 17일 “1992년 첫 간이식 수술 이후 많은 중증 환자를 수술했음에도 성공률이 98%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고인 팀워크 덕분”이라며 팀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서울아산병원은 첫 간이식 수술 28년 만에 7000번째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수술 성공률도 세계 최고다. 2017년에는 생체간이식(361건) 수술 사망률 0% 기록도 세웠다. 한국은 뇌사자 기증이 적어 건강한 가족이 간 일부를 기증하는 생체간이식 수술이 발달했다. 서울아산병원은 1994년 이 수술을 처음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5805건을 진행했다.

7000번째 간이식 수술 환자도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황달 등의 증상으로 담즙성 간경변증 진단을 받은 67세 환자 임모씨는 “어머니를 위해 간을 기증하겠다”고 나선 아들 이모씨(41)의 도움으로 새 삶을 찾았다. 수술을 집도한 이 교수는 “중증 환자를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수술법을 개발하면서 기증자와 수혜자 영역을 넓혔기 때문에 7000건의 수술을 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교수가 개발한 2 대 1 생체간이식은 작은 메모 한 장으로 시작했다. 당시 말기 간경화로 시한부 삶을 살던 김유영 씨에게 생체간이식 수술을 하려고 했지만, 가족은 모두 좌엽이 다른 사람보다 25% 정도 작았다. 우엽을 떼어주고 나면 기증자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이 교수는 ‘하나로 부족하다면 두 개는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간 모양 삼각형 종이를 오려 노트에 붙였다 뗐다 하면서 며칠 밤낮을 고민했다. 2000년 3월 21일 23시간 걸리는 대수술 끝에 그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열었다.

당시 생체간이식 수술 강국은 일본이었다. 수술 후 상황은 역전됐다. 이 교수팀이 간이식 수술을 배워온 일본 교토대, 독일 함부르크대 의료진도 서울아산병원의 수술 기술을 배워갔다. 이 교수팀에게 수술받기 위해 미국 칠레 등에서 한국을 찾은 환자는 112명에 이른다.

세계 간이식의 역사를 쓴 순간에도 이 교수는 환자를 떠올렸다. 그는 “20년 전 세계 처음으로 시도한 2 대 1 간이식 수술을 받았던 환자처럼 우리 팀을 믿고 따라준 환자와 가족이 없었다면 이런 세계적 간이식팀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환자와 기증자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