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주재로 17일 서울 용산에서 열린 ‘스포츠분야 인권보호 대책 안내 및 의견수렴’ 간담회엔 빈자리가 가득했다. 문체부가 참석을 요청한 대한체육회 소속 62개 종목단체 회장 가운데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10명 남짓.
문체부는 종목단체들에 지난주 공문을 보내 회장의 간담회 참석을 요청했다. 비극적인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 이후 인권보호에 관한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였다. 62명의 단체장을 세 그룹으로 나눠 14, 15, 17일 사흘간 열려 했던 간담회는 처음부터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상근부회장이나 사무총장의 대리참석을 불허했기 때문. 한 종목단체 고위 관계자는 “사전 협의 없이 1주일 전에 문체부가 협회장에게 오라고 하는 바람에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며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눈치에 기업인인 회장님께 부탁했지만 6개월 전에 잡힌 중요한 미팅이 있어 미안하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시간은 안 되는데 회장만 와야 한다는 조건이 달리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지난달 스포츠윤리센터 개설 이후 접수된 신고들을 보니 사태가 심각해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에 촉박하게 일정을 잡았다”며 “차관이 이미 부회장들과는 간담회를 했기 때문에 대참을 불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관 스케줄을 최우선에 둔 문체부의 결정은 결국 대규모 불참 사태를 일으켰다. 간담회 참석률 저조가 문체부의 ‘일방적 의사결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태원 대한핸드볼협회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등 종목단체 회장 중엔 현역 기업인이 많다. 공적 스케줄을 소화하는 게 늘 간단치 않다. 특히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들이 1주일 전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회장들의 불참 의사가 쏟아지자 문체부는 간담회 일정을 이날 하루로 축소했다. 밀도 높고 광범위한 의견을 듣지 못했으니 간담회의 취지도 빛이 바랬다. 체육계 한 원로는 “자초한 일이다. 1주일 앞두고 협회장을 부르면 올 거라고 생각하는 문체부가 선수 인권을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실효성을 우선시한다면, 서면 제출 등 다른 방식의 의견 수렴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거라는 비판도 나온다.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선의로 맡은 자리 때문에 국회나 정부에 툭하면 호출되는 마당인데, 굳이 한 종목의 부회장부터 회장까지 모두 부르는 ‘대면 간담회’ 형식을 고집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한 기업인은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간담회를 추진하면 될 일을 서두르다가 체면을 구겼다”고 했다.
간담회는 ‘정답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체육계와 문체부가 언제쯤 그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