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5월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는 자국에서 유행하는 전염병 소식을 듣고 코웃음 치며 ‘인기 많은 질병’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그도 이 병에 걸렸다. 그제야 스페인 국민들은 위험을 인지했다. 신문마다 1면에 플라멩코 드레스를 입고 악귀의 형상을 한 여인 삽화가 실렸다. ‘스페인 여인’이라 불렀던 질병은 바로 ‘스페인 독감’. 1918년 창궐해 2년 동안 1억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이다.
영국 역사학자 캐서린 아놀드가 스페인 독감의 역사적 맥락을 짚은 《팬데믹 1918》에 실린 일화다. 저자는 희생자 가족 인터뷰 녹취록, 일기, 회고록 등 방대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독감 전파 과정을 소개한다. 죽음에 이른 환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도 함께 담으며 당시 현장을 복원한다.
저자는 우선 전염병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 살핀다. 당시 스페인은 독감 창궐지가 아니었다. 스페인 언론이 본격적으로 이 전염병을 다룬 탓에 오명을 쓴 것이다. 스페인은 당시 1차 세계대전 중립국이어서 언론 검열이 참전국인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 심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은 ‘국토방위법’이 제정돼 국민들에게 절망을 안기는 기사는 신문에 실을 수 없었다. 런던의 타임스도 스페인 독감을 한낱 지나가는 유행처럼 취급했다”고 주장한다.
1918년 가을 스페인 독감 2차 확산이 시작되자 전염병의 위력을 전 세계가 실감했다. 감염자 중 최소 10%는 사망했다. 창궐 후 2년 동안 약 1억 명이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했다. 저자는 “언론 검열과 부정확한 진단을 감안하면 밝혀지지 않은 사망자는 이보다 많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각국은 스페인 독감이 치명적인 질병이란 걸 깨달았지만 방역은 뒷전이었다. 전쟁터에선 부대들이 밀집대형을 유지한 채 이동해 전염병을 확산시켰다. 참전국들은 국민 사기를 고려한다는 명분으로 격리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미국에선 시민들을 전쟁에 동참시키려 대형 국채 구매 운동을 벌였다. 영국 정부는 전후 승전 퍼레이드까지 펼쳤다. 이 때문에 전후 1년 동안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거로부터 뭘 배워야 할까. 저자는 스페인 독감의 변종 이유를 찾으려 희생자 유골을 발굴해 조사한 존 옥스퍼드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전염병이 됐지만 1918년에는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가정’이란 전선에서 방역을 무기로 싸웠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