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 이사철엔 집주인과 세입자 분들 모두 혼란스럽고 불안한 것 같습니다. 최근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두고 갈등과 해석이 분분하기 때문입니다.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돕기 위한 임대차보호법이 오히려 서민 주거불안을 가중시킨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특히 집주인이 매매하려는 집에 임차인이 거주하는 경우 계약갱신청구권이 쟁점으로 떠오릅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집주인이 실거주를 하려 해도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이미 행사했다면 새 주인이 실거주를 할 수 없습니다. 임차인의 청구권을 보호해줘야 하기 때문이죠.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가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지난 16일 저녁 설명자료를 하나 내놨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 팩트체크를 해보겠습니다.
국토부가 내놓은 자료의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선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상 갱신거절 사유를 만들 목적으로 단기간만 거주하고 매각하여 실거주하지 않는 경우, 이를 위법행위로 봅니다. 물론 여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겠죠. 이런 식으로 임차인을 내모는 것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문제는 임대차 관계에서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국토부가 별도의 임대차보호법 해설집을 내놓은 것도 모자라 설명자료를 따로 내는 건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먼저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7월31일) 전에 실거주 목적의 매매계약을 체결한 경우 입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임대차법 개정 전에는 계약갱신청구권 제도의 시행을 예측할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국토부는 “임차인의 퇴거를 믿고 매매계약을 체결하였고, 매수인이 해당 주택에 들어와 살아야 하는 실거주자인 경우,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임대차법 제6조의3제1항제9호의 갱신거절 사유인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중대한 사유에 포함되려면 위의 모든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는 겁니다.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집을 팔려고 하는데 새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한다”고 말했고, 이를 임차인이 받아들여서 “그럼 집을 비우고 나가겠다”고 합의한 경우에, 또한 새 집주인이 실제로 직접 들어와 사는 경우에 갱신거절 사유가 성립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중대한 사유에 포함된다”가 아닌 “중대한 사유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명확하게 결론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위의 조건을 모두 만족했다 해도 개별 사안에 따라 중대한 사유에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개정 임대차법 시행 이후에는 어떨까요.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퇴거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를 믿고 실거주 목적의 제3자와 매매계약 등을 체결한 경우”입니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당사자 간의 논의 경과 및 제3자와의 새로운 계약체결 여부 등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주임법 제6조의3제1항제9호의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임대차법 시행 전과 다른 점은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고”라는 점입니다. 즉,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하기로 했다면 새로운 집주인이 들어와 살 수가 없다는 뜻이죠. 그런데 이 역시 위의 조건을 모두 완벽하게 충족한 경우입니다. △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하며 △퇴거도 약속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국토부에 문의한 결과 “양자의 의사가 어땠느냐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한다”고 합니다. 집주인이 “임차인이 나가겠다고 말했다”라고 주장하는 정도면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보는 겁니다. 단순히 매도인(집주인)이 “집을 팔아야 하니 협조해달라”고 하고 임차인이 “알았다. 협조하겠다”고 말한 정도로는 임차인이 확실하게 “갱신요구권을 행사 안하고 나가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죠. 앞서 짚어봤듯이 “갱신요구권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하여” 이 정도 수준은 돼야 한다는 겁니다. 즉, 임차인의 발언을 넓게 해석하는 건 곤란하는 게 국토부의 입장입니다. 넓은 해석을 허용할 경우 임대인이 슬쩍 임차인을 떠볼 수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이 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죠. 국토부 관계자는 “임차인이 “다른 데 마땅한 집이 구해지면 나가는 걸 고려해보겠다” 이런 식으로 얘기한 정도로는 퇴거에 합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임차인이 확실하게 의사표시를 했는지 엄격하게 봐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입니다.
그럼 의사표시를 어떤 방식으로 확인해야 할까요. 말로도 가능하고 문자메시지, 문서로도 가능합니다. 단 확실한 의사표시가 기록으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임차인이 구두로 확실하게 “갱신요구권 행사하지 않고 퇴거하겠다”라고 얘기했다 해도 녹음을 안했다면 입증하기 힘듭니다. 이럴 경우 임대인이 한 번 더 확인해서 기록을 남겨두면 됩니다. 전세가 한 두푼이 아닌 수천만원 혹은 수억원짜리 거래인만큼 확실한 증빙자료를 남겨놓는 건 집주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집주인이 매매계약을 할 때 임차인 입장에선 계약만료 9개월 전입니다. 이 때 당시 집주인이 주택 매도 및 새 주인의 실거주 의사를 전달했고 임차인이 퇴거의사를 밝혔으며, 기록으로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후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기간(계약만료 6개월~1개월 전)에 임차인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갱신요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국토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일 때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경우에는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다. 하지만 계약만료 시점이 6개월 이상 남았을 때는 갱신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 때 단순히 향후 집을 비워주고 나갈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는 임차인이 확실히 갱신요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나가기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
국토부에선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이 도래하기 전에 집주인이 퇴거요청을 한 것에 대해 “어떤 측면에선 임차인에게 불리한 약정이 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임대차보호법은 강행규정이고 임차인에게 불리한 약정은 무효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정부는 사전에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은 임차인에게 불리한 약정으로 주임법 위반이며 무효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이 도래하기 전에 임차인에게 나가달라고 한 이번 사례도 사전에 불리한 약정을 요구한 것으로 볼 여지도 많다는 것이죠.
국토부도 임대차 관련 분쟁에 대해선 “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고려해야 할 게 많다”고 말합니다. 어떤 경우든 확실한 합의가 있느냐에 따라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일단 중요한 건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나갈 집이 정해지면 나갈게요” 이 정도 발언은 퇴거에 대한 합의로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집주인의 경우 임차인에게 퇴거를 요청할 때 “협조하겠다”는 말만 믿고 다음 계약을 추진해선 안 됩니다. 보다 확실한 합의와 의사표시를 확인한 뒤에 움직여야 합니다. 임차인 역시 “협조하겠다” “나갈 집을 알아보겠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주택시장을 보면 새로운 임대차 규정으로 인해 정부가 의도했던 “원만한 임대차 관련 문제 해결”이 제대로 이뤄지진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갈등과 분쟁이 늘어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규정을 둘러싼 오해와 불만이 하루 빨리 해소되길 바랍니다.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사는 집’과 관련해서는 걱정 없고 불만 없는 주거환경이 조성되길 바랍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