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왜 ARM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입력 2020-09-16 14:29
수정 2020-09-16 16:22
엔비디아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암홀딩스(ARM) 인수는 반도체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 딜로 꼽힌다. 매각 규모가 400억달러(47조5000억원)에 이른다. 엔비디아와 소프트뱅크는 소프트뱅크와 자회사가 보유한 ARM 지분 전량 매각에 합의하고, 각국 정부의 승인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① 반도체 공룡의 탄생ARM은 세계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기초설계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이다. 손꼽히는 글로벌 IT 기업인 삼성이나 퀄컴도 이 회사의 설계를 기반으로 AP를 만든다.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서 인텔과 맞먹는 반도체 공룡이 탄생하게 됐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 등 경쟁 업체들에 유쾌한 소식은 아닐 것"이라며 "앞으로 엔비디아가 반도체업계에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다"고 평가했다.

ARM이 매물로 나왔을 때 삼성전자가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제기됐다. ARM을 품에 안은 엔비디아가 삼성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만큼 인수를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ARM인수에 큰 관심이 없었다. ARM을 인수로 따른 기존 사업에서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는 전언이다.
② 삼성 "기존 고객과의 이해관계가 우선" 특히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1위에 오르겠다는 '반도체 2030' 비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퀄컴 등 기업들은 삼성전자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를 맡기면서 삼성이 자신들의 반도체 구조를 들여다보는지 의심하고 있다"며 "그런 삼성전자가 ARM까지 안게 되면 파운드리 고객사가 줄줄이 빠져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격도 문제였다. ARM의 지난해 매출은 19억달러로 매각액 400억달러의 5%도 안되는 수준이다. 종합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문업체로 AP 관련 기술이 절실한 엔비디아와 입장이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엑시노트 등의 AP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이미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한 상태다. ③ 본격화되는 'ARM 탈출' 움직임 엔비디아가 기존 ARM이 유지해온 중립적 입장을 깨고 모바일AP 라이선스 가격을 올린다고 해도 큰 타격은 없다는 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모바일AP 기초설계 라이선스 비용은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반면 ARM 인수가액은 400억달러여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반도체업계에선 독자생존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안기현 반도체협회 상무는 "ARM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오픈소스 설계업체인 리스크5 등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