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해줘야 할 말을 자기가 하면 실패입니다."
한 언론인이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정은경 질병관리청 초대청장 임명식에서 권위를 낮췄더니 감동을 줬다"는 자화자찬에 대해 한 말이다.
탁현민 비서관은 지난 13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려고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잘 기획된 행사가 누군가를 돋보이게 만든다"면서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누구든 보면 안다. 그러니 쇼라고 소리지를 필요도, 쇼가 아니라고 변명할 필요도 실은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자평은 일각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최초로 현장을 찾아 임명장을 준 일이 '보여주기'라는 비판이 나온 데 대한 반박으로 해석된다.
탁현민 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충북 청주의 질병관리청을 직접 방문해 정은경 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일을 두고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이렇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그 형식과 내용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망치가 돼 또 한 번 나를 때린다"고도 적었다.
격식을 버리고 진행된 임명식 수여식에 호평이 이어졌지만 청와대 실무자의 자화자찬이 민망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정은경 청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것을 직접 보기 위해 수많은 직원들이 밀집한 모습도 거리두기에 힘겨워하는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샀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게시한 청원인은 '소상공인은 위험하다고 영업정지해서 다 죽어가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밀접해서 모여도 되나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코로나19 방역 심각이라는 빨간불이 켜진 곳에서 모두가 거리 유지도 없이 몰려 격려하는 장면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라고 지적했다.
정은경 청장은 '임명장 수여식 거리두기 미준수'를 지적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관련해 방역수칙을 준수했지만 송구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정은경 청장은 "자영업자들께서 그런 장면을 보고 고통과 괴리감을 느끼셨다는 것에 대해 송구하다"며 "좀 더 자중하고, 방역수칙 준수나 이런 부분들에 대해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탁현민 비서관의 말대로 감동만 남았어야 할 임명장 수여식에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킨 것은 K방역 영웅에 대한 평가였다.
한 현직 의사가 문재인 정부가 정은경 청장을 코로나 영웅으로 추켜세우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정은경이 한 게 현황 브리핑 밖에 더 있나"라며 "(머리)염색 안 한 것과 브리핑한 것 가지고 K방역 영웅(평가는) 민망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직 의사 A씨는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중국발 입국을 막았어? 마스크 중국 수출을 막았어? 여행 상품권을 막았어? 임시공휴일을 막았어?"라며 "코로나 검사율도 인구 대비 세계 100번째 안에도 못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은경 청장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고위험지역인 후베이성발 입국을 금지하자는 건의를 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며 뒤늦게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정은경 청장은 지난달 정부가 광복절에 맞춰 임시공휴일을 지정했을 때도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아 결과적으로 재확산의 계기가 됐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식에서 "세계에서 모범으로 인정받은 k방역의 영웅, 정은경 본부장님이 승격되는 질병관리청의 초대 청장으로 임명된 것을 축하한다"며 "지금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질본 상황을 감안하고, 또 무엇보다도 관리청 승격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질본 여러분들과 함께 초대 청장의 임명장 수여식을 하는 것이 더욱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고생한 사람 중 한 분 일뿐이지. 영웅은 현장에서 직접 일한 의사, 간호사, 보건 공무원 등이다"라는 의견과 "정은경 본부장 뿐만 아니라 의료진 모두가 고생하고 애썼다고 하면 될 걸 뭘 한 게 있냐는 건 심하다. 위에 있는 사람은 하는 것 없어 보여도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생이다. 우리 눈에 안 보인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다", "전쟁에서 전술 짜고 지휘하는 장군은 한 일 없고 병사들만 일한 거라는 얘기인가?", "탁현민의 자화자찬이 유치하다. 자기들이 해놓고 크게 칭찬받지 못하니까 스스로 잘했다고 하는 격이다" 등의 반응도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전쟁 중인 장수를 청와대로 부를 수 없어 직접 현장을 방문한 것'이라는 청와대 입장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직원들을 현장에 부르지 말고 비공개로 조용히 임명식을 했어야 한다. 국민들에게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조하면서 이렇게 모여서 임명식을 하는 모습 때문에 국민들이 보여주기식이라고 비판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