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되면 우린 그냥 대출 막 해주면 되나요?”
이재명 경기지사가 저신용자가 돈을 갚지 못하면 국가가 대신 갚아주는 내용의 ‘기본대출권’을 주장한 다음날인 14일 은행원 전용 익명 커뮤니티에는 이 지사에 대한 비판적인 댓글이 다수 달렸다.
한 이용자는 “저소득자들은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물가에 맞춰서 최저생계비를 올려줘야지 무리하게 대출받을 권리를 줘야 한다니. 상한 대게를 많이 잡쉈나”라고 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기본’이 아주 만능 단어네. 사회주의적 배급의 2020년형 표현법”이라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전날 “담보할 자산도 소득도 적은 서민들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최대 연 24% 초고금리로 돈을 빌려야 한다”며 “수입이 적고, 담보가 없다고 해 초고금리를 내는 것이 당연한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저신용자의 금리를 연 1% 수준으로 대폭 낮추고, 이들이 빚을 갚지 못해도 정부가 갚도록 하자는 것이다.
대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금리다. 금리는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 즉 연체 가능성을 따져 결정된다. 이 지사 주장처럼 누구나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으면 좋지만, 이런 방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 지사 주장에 대해 은행원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건 당연한 결과다.
저신용자에게 낮은 금리를 적용하면 중신용자는 역차별을 받게 된다.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7~10등급의 저신용자는 낮은 금리 혜택을 누리게 되지만, 카드론 등을 이용하는 4~6등급의 중신용자는 이보다 높은 금리로 대출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대부업체 대출이 약 200만 명에 약 17조원이니 연체되는 최대 9%(1조5000억원)를 전액 국가가 부담하면 적은 예산으로 (저신용자의) 복지 대상 전락을 줄일 것”이라고 했다. 이 지사가 예상한 예산은 올해 서울 강남구 전체 예산(1조162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더구나 최고 금리가 연 24%인 지금도 200만 명이 17조원의 대출을 받는데 이 지사 주장대로 금리가 연 1%로 떨어지면 대출 규모가 얼마나 늘어날지 상상하기 힘들다.
이 지사의 기본대출권은 사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에게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연 1.5% 고정금리로 대출해주는 이차보전대출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자금난에 빠진 소상공인의 몰락을 막기 위한 일시적인 정책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담보 없이 돈을 빌려줘 노벨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조차 이자율이 연 20%에 달한다. 그라민은행은 단독으로는 돈을 빌려주지 않고, 다섯 명에게 함께 돈을 빌려준다고 한다. 미상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기본대출권이 성공한다면 이 지사는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 비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