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IPO 열기가 일깨운 도전정신, 한국 경제 활력될까

입력 2020-09-14 17:45
수정 2020-09-15 00:16
1859년 말에서 1860년 초 몇 달 사이에 영국에선 천재로 불리던 엔지니어 3명이 잇달아 사망했다. 증기기관 보급과 철도 건설을 주도한 이점바드 브루넬, 로버트 스티븐슨, 조지프 로크가 그들이다. 특히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스티븐슨의 장례식에는 조문객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그리고 이는 영국 사회가 엔지니어의 죽음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는 깊은 애도를 표한 마지막 이벤트로 평가된다. 국가의 부흥기를 주도했던 위대한 기술자들의 잇따른 죽음 이후 기술자들의 개척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기리는 풍조는 점차 눈에 띄게 약해졌다. 영국이 산업혁명의 고도화 흐름에서 밀려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

한국 사회도 얼마 전까지 쇠퇴기 영국과 비슷한 모습을 띠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저성장 기조가 날로 심화하거나 높아지는 청년 실업률 같은 경제지표를 접하면 어깨가 축 처질 수밖에 없었다. 기업가 정신의 실종이나 반기업 정서의 강화 같은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사회 기풍이 위축되는 모습이 뚜렷했다. 크고 작은 기업들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매물로 나온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쳐 안 그래도 어려운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이처럼 나라 안팎이 힘들지 않은 곳이 없지만, 최근 여러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한 활력을 과시하는 분야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기업공개(IPO) 시장이다. 지난 6월 말 SK바이오팜이 상장 ‘대박’을 터뜨린 데 이어 이달 초엔 카카오게임즈가 바통을 이어받았고 빅히트엔터테인먼트도 본격적인 상장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가파른 주가 상승과 ‘묻지마 투자’ 경향 탓에 거품 우려도 있지만 바이오와 게임, 한류 엔터테인먼트 등 한국의 차세대 주력 산업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반영됐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이들 새내기 상장사와 상장 추진 업체들이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듯싶다. SK바이오팜은 복제약을 만드는 바이오시밀러가 아니라 성공 확률은 낮더라도 더 큰 과실을 누릴 수 있는 신약 개발(뇌전증 치료제 등) 도전에 나서면서 시장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빅히트는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1위에 오르는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꿈을 이룬 경영자들의 성공 스토리도 이어지고 있다.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각자대표는 전국의 PC방을 모두 훑는 발로 뛰는 영업으로 ‘한게임’ 신화를 일궜던 인물이다. 대학교 동아리방에서 기타 하나 둘러멘 채 작곡자 겸 가수를 꿈꿨던 청년 방시혁은 사업가로 변신한 뒤 치밀한 아이돌 육성 전략을 바탕으로 한류 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도 전국의 주요 대학에선 로봇부터 로켓까지 각종 정보기술(IT) 분야,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부터 치매 치료제까지 바이오 분야에서 손쉽게 돈을 버는 것 대신 실력을 키우는 길을 택한 청년 벤처 기업인이 적지 않다. 한 대형 벤처투자회사 임원은 “인공지능(AI)과 바이오, 헬스케어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기술력과 추진력, 기업가 정신을 겸비한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며 “전 세계 어느 기업과 경쟁해도 뒤지지 않을 기업이 끊이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SK바이오팜과 빅히트를 뛰어넘는 새 얼굴들이 계속 등장해서 한국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내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