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을 마실 때 물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근원을 한 번쯤 생각해봐야(음수사원·飮水思源) 한다. 그러면 물의 소중함이 와닿고 물을 아껴 쓰게 된다. 한류(韓流)도 비슷한 생각법과 관점으로 바라보자. 1980년대 이전엔 왜 K-Pop, K-Drama, K-Cinema와 같은 한류가 없었을까?
넓은 관점에서 보면, 한류의 확산은 대한민국의 국력 성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대장금, 욘사마, 보아, 슈퍼주니어, 샤이니, 소녀시대, 싸이, 영화 기생충, BTS가 연이어 탄생한 밑바탕에는 한국 경제 성장이 자리하고 있다. 경제와 문화는 다른 영역이어서 직접적인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따질 수 없다는 의견이 있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 주류 문화를 이끄는 나라치고 못 사는 나라가 없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먼 과거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먹고살만해지면 대중이 문화를 찾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을 숫자로 빠르게 훑어보자. 대한민국 헌법이 선포된 1948년 무역(수출+수입)액은 겨우 2억달러였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1967년 10억달러를 거쳐 1974년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1000억달러를 거쳐 2000년과 2005년에 3000억달러와 5000억달러를 각각 넘어섰다. 2011년 마침내 세계 아홉 번째로 1조달러를 찍었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에 이어 ‘무역 1조 클럽’에 가입한 나라가 됐다.
국가 경제력이 치솟고 개인 소득이 증가하면서 더 많은 문화와 레저를 원하는 사회적 압력은 상승했다. ‘쌀독에서 인심과 도덕심이 길러지고, 지갑에서 문화가 꽃핀다’는 말은 100% 맞지는 않지만 대부분 옳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노래도 듣고, 영화관도 가고, 여행도 다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 한국만큼 성공한 나라가 없다는 점이 국제적으로 인정되면서 한국을 향한 지구촌의 눈길이 달라졌다. ‘한국을 배우자’는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번졌다. 한류의 근간은 바로 한국 국력의 성장이었다.
거시적 관점보다 낮은 단계인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기업들의 눈부신 활약이 한류를 업그레이드시켰다. 1960년대 한국 기업은 보잘것없었다. ‘코리안 레밍(쥐가죽 제품)’은 한국을 비하하는 말이었다. 이렇다 할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던 한국 기업들은 싼 상품밖에 만들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한국에 삼성, 현대차, LG, 포스코, CJ, JYP, YG, BTS가 생기자 ‘한류’의 위상은 달라졌다.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철강, 조선산업이 만들어낸 강력한 하드웨어 제조업 파워가 한국식 소프트웨어 파워와 결합했다.
한류는 ‘하루 생활권이 된 지구촌’ 조류에 올라타는 문명사적 운(運)까지 얻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하면서 한 나라의 특정 트렌드는 하룻밤 새 지구촌으로 번진다. 최근 BTS가 낸 노래 ‘다이너마이트’는 음원 발매 시작과 동시에 전 세계에서 히트를 쳤다.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BTS의 효과는 무려 1조7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문화체육관광부)이 나왔다. BTS 성공사례는 미국 경영대학에서 21세기 마케팅 혁신의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5000만 명, 1억 명이 하루, 이틀 만에 ‘클릭’한 사례는 기업들의 마케팅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넷플릭스, 유튜브, 아마존, 구글, 애플, 삼성 같은 기업들은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한다. OTT(over the top) 플랫폼을 이용하는 거대 비즈니스다. BTS를 필두로 한 한류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격돌하는 세계시장에서 한국에 큰 무기가 된다.
음악 한류를 논할 때 SM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 ‘이수만’(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비디오 시대와 첨단 통신시대가 올 것임을 알고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바로 ‘립싱크도 장르다’다. 노래 자체도 중요하지만 춤도 중요하다고 본 그는 아이돌의 ‘칼군무’를 앞세웠다. 워낙 격렬한 춤이어서 노래를 생방송으로 하기 쉽지 않다고 보고 ‘립싱크’를 적극 도입했다. 기획사가 팀을 구성하고 장기간 교육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런 DNA가 JYP, YG, 방시혁 사단으로 이어졌다. 한류의 거시적, 미시적 근원은 ‘한강의 기적’과 맞닿아 있다고 보는 게 옳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NIE 포인트① 국가 경제력과 한류 간의 상관관계를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 측면에서 따져보자
② 미국 빌보드 차트를 휩쓴 BTS의 효과는 경제적으로 얼마의 가치를 지녔을까?
③ ‘립싱크도 장르다’라고 말한 SM 설립자 이수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는 어떤 역할을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