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독감 동시 유행 '트윈데믹' 온다…고령층, 독감백신 꼭 맞아야

입력 2020-09-11 13:21
수정 2020-09-12 01:56
“독감 백신을 맞아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독감이라는 두 개의 잠재적 호흡기 감염병 중 적어도 한 가지에 대한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의 말이다. 북반구 국가에 독감 시즌이 다가오면서 코로나19와 독감이 함께 유행하는 ‘트윈데믹’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트윈데믹은 비슷한 두 개 질환이 함께 유행하는 것이다. 두 질환 감염자가 섞이거나 한 사람이 두 개 질환을 동시에 앓는 사례가 생겨 의료시스템에 큰 혼란을 줄 수 있다. 올겨울 독감 시즌을 앞두고 전문가들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이유다.

독감과 코로나19, 다르지만 비슷독감과 코로나19는 다르지만 비슷한 질환이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돼 생기는 호흡기 질환이다. 갑자기 고열이 나면서 전신 근육통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 기침, 인후통, 가래 등 호흡기 증상도 생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기관지가 망가지고 2차 세균감염이 생겨 세균성 폐렴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도 높다. 최천웅 강동경희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가을과 겨울철에 유행하고 잠복기는 평균 2일 정도”라며 “성인은 증상이 생기기 하루 전부터 증상이 생긴 뒤 3~7일까지 전파력이 있지만 소아는 1주일 넘게 바이러스를 전파하기도 한다”고 했다.

코로나19도 호흡기 감염병이다. 38.5도를 웃도는 고열과 마른기침이 주요한 증상으로 알려졌지만 두통, 콧물, 호흡곤란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한다. 증상을 호소하기 2~3일 전부터 전파력이 있는 데다 바이러스 배출을 멈출 때까지 증상이 없는 환자도 있다. 코로나19의 치사율은 2% 정도다. 계절독감의 치사율(0.1%)보다 높다.

독감과 코로나19를 증상만으로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질환 모두 호흡기 감염병인 데다 두통, 발열, 인후통, 기침 등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독감 환자와 코로나19 환자가 섞이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독감 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독감-코로나19 동시 감염도독감과 코로나19의 유행시즌이 겹친 것이 처음은 아니다. 대개 독감은 겨울에 A형 인플루엔자 감염자가 늘었다가 초봄에 다시 B형 인플루엔자 감염자가 증가하는 패턴을 보인다. 국내 코로나19 유행이 올해 초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국내 봄 독감 시즌과 코로나19 유행이 겹쳤다.

실제 올봄 코로나19 확진자의 밀접접촉자로 분류됐다가 증상을 호소해 격리한 사람 중 일부가 독감 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국내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전담하는 신종감염병중앙임상위원회는 당시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나은 뒤 독감 또는 감기에 걸린 사람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 중 대다수가 재양성 환자로 분류됐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다.

올해 4월 브리핑에서 오명돈 신종감염병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은 “코로나19 증상과 감기 증상은 구분이 안 된다”며 “(재양성 환자에게) 코로나19 검사와 함께 인플루엔자 등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 검사를 해보면 다른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도 많이 발견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한국보다 먼저 겨울 독감 시즌을 맞이한 나라도 있다. 호주, 뉴질랜드 등 남반구 국가다. 호주의 겨울 독감 유행시즌은 6~8월이다. 올해 환자는 지난해보다 99% 급감했다. 대규모 록다운(이동제한)을 통해 사람들 간 이동을 줄였기 때문이다. 움직임을 멈춘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독감 백신 접종’이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그대로 올겨울 국내에 대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국내에서는 록다운과 같은 높은 수준의 거리두기를 시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록다운을 풀고 일상생활을 시작한 미국, 유럽 등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활동을 줄였던 올봄 국내에서 독감은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겨울에도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하면서 국민들의 경각심이 코로나19 유행 초기보다 많이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고위험군, 독감과 폐렴구균 백신 도움트윈데믹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손씻기다. 이런 대응과 함께 독감 백신도 도움이 된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독감 백신의 독감 예방률은 40~60% 정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A/H1N1pdm09형과 A/H3N2형이 유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A/H1N1pdm09형은 2009년 신종플루를 일으킨 바이러스다. B형은 빅토리아와 야마가타다.

제약사들도 이에 맞춰 백신을 출시했다. WHO의 예상처럼 이들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백신 효과가 높아지지만, 이들과 다른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백신 미스매치 현상이 발생하면 효과는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가급적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낫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백신을 맞으면 독감에 걸리더라도 심한 증상이 생기는 위험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지용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유아 또는 노년층 중심으로 예방접종을 권장하지만 올해는 모든 연령층에서 적극적인 독감 예방 접종이 필요하다”며 “독감 예방 접종을 통해 독감은 어느 정도 보호 효과를 내기 때문에 이후 발생하는 코로나19 감염 증상과 구분하는 조건이 마련된다”고 했다.

노인 등 고령층은 폐렴구균 백신을 접종하는 것도 좋다. 독감과 폐렴 백신을 함께 맞으면 폐렴으로 인한 입원율과 사망률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폐렴구균 백신은 세균 감염을 막는 것으로, 바이러스성 폐렴을 막는 데에는 도움되지 않는다.

하지만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 감염 후 추가 세균성 폐렴 합병증이 생기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폐렴구균 백신은 13가지 균을 막는 13가 백신, 23가지 균을 막는 23가 백신이 있다. 65세 이상 고령층은 23가 백신을 한 번 무료로 맞을 수 있다. 독감 무료 접종 대상 역대 최대트윈데믹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독감 백신 접종 대상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올해 독감 무료 접종 대상은 지난해보다 500만 명 늘어난 1900만 명이다.

A형 바이러스 두 가지와 B형 바이러스 한 가지를 예방하는 3가 백신 대신 A형 두 개, B형 두 개를 막는 4가 백신을 표준 접종으로 정했다. 무료 접종 대상자는 백신을 맞아야 한다.

마스크는 더욱 신경써 매일 빼놓지 말고 착용해야 한다. 코와 입을 밀착해 가리고 마스크 안쪽 면이 오염됐거나 땀으로 축축해졌다면 바로 바꿔야 한다. 매일 함께 사는 가족을 제외한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실내는 물론 차 안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 수시로 손을 씻는 것도 중요하다. 트윈데믹으로부터 자신은 물론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다.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