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추가경정예산에 포함된 ‘한국판 뉴딜’ 관련 사업의 절반은 예산 집행률이 0%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3차 추경에 4조8000억원 규모의 뉴딜 관련 예산을 편성했지만 2개월이 지나도록 관련 사업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정책인 한국판 뉴딜을 위해 예산부터 배정한 ‘졸속 추경’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추경호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11일 한국판 뉴딜 사업을 하기로 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행정안전부, 산림청 등 16개 부·청에서 제출받은 ‘3차 추경 한국판 뉴딜 사업의 집행 현황(8월 말 기준)’을 분석한 결과,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보건복지부의 사업을 제외한 141개 관련 사업 중 67개의 집행률이 0%였다. 배정받은 예산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산업부의 신재생에너지보급지원 사업과 가정용 스마트 전력 플랫폼 사업, 행안부의 재난관리시스템 구축, 환경부의 대기오염 측정망 구축 등이다. 과기정통부의 차세대 인터넷비즈니스 경쟁력 강화, 행안부의 행정기관 정보시스템 클라우드 전환 등 19개 사업도 집행률이 1% 미만에 그쳤다.
관련 부처들은 대부분 사업 추진이 늦어지고 있는 데 대해 “사업 절차는 진행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3차 추경에 한국판 뉴딜과 관련해 시급성이 떨어지는 사업이 대거 포함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코로나19 대응의 긴급성’을 강조하며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속전속결로 추경안을 처리했다.
추 의원은 “한국판 뉴딜 관련 사업 절반이 예산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묻지마 예산’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시작도 못한 3차 추경 뉴딜사업
과학교육·함정건조가 시급?…추경에 뉴딜 끼워넣어 '묻지마 통과'3차 추가경정예산이 국회를 통과한 지 두 달여가 지나도록 ‘한국판 뉴딜’ 관련 사업의 절반은 예산을 한푼도 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판 뉴딜 사업을 하기로 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16개 부·청의 141개 사업(보건복지부 제외) 가운데 신재생에너지보급지원 사업·재난관리시스템·대기오염측정망 구축 등 67개 사업은 지난 4일 기준 예산 집행률이 0%에 그치고 있다. 한국판 뉴딜 추진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시급성이 떨어지는 사업까지 추경에 끼워넣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졸속 편성’에 시작도 못한 사업 많아11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가장 많은 한국판 뉴딜 사업을 추진 중인 과기정통부의 24개 사업 중 5개가 0%, 나머지 14개가 1% 미만의 집행률을 보였다.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은 단 다섯 개뿐이다. 다만 과기부는 추 의원의 실집행률 자료 요구 이후 관련 사업들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두 번째로 많은 23개 사업을 맡은 환경부 역시 14개가 집행률 0%였다. 산업통상자원부(16개 중 8개), 중소벤처기업부(15개 중 13개), 교육부(9개 중 8개), 행정안전부(7개 중 6개), 해양수산부(5개 중 3개), 국방부(2개 중 2개) 등에서도 시작조차 못한 사업이 많았다. 청들은 더 부진했다. 산림청 2개, 문화재청 1개, 해양경찰청 2개 사업 모두 0%의 집행률을 보였다.
산업부는 한국판 뉴딜 사업 중 하나인 신재생에너지보급지원 사업에 550억을 배정받았다. 태양광 설비 등을 설치하는 주택 및 건물을 직접 지원한다는 사업이다. 중장기 차원에서 해야 할 사업을 한국판 뉴딜이란 명목으로 추경에 끼워 넣은 셈이다. 현재 집행률은 0%다. 282억원을 받은 가정용 스마트 전력 플랫폼 사업과 70억원을 받은 에너지 진단보조 사업 등도 예산이 전혀 집행되지 않고 있다. 과기부의 차세대 인터넷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489억원), 행안부의 재해위험지역 조기경보시스템 구축(288억원), 환경부의 대기오염측정망 구축(141억원) 등도 마찬가지다.
해양경찰청의 하이브리드 함정 건조(90억원), 액화천연가스(LNG)방제정 건조(36억원) 등 뉴딜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업들도 한국판 뉴딜 예산만 받아놓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에 반한다는 지적에도 한국판 뉴딜 관련 예산을 따낸 사업도 있다. 국방부는 첨단과학훈련 및 교육 사업에 118억원, 첨단정보통신교육에 53억원을 배정받았다. 장병들을 위한 교육장을 짓고 4차 산업혁명 체험장을 구축하는 등 집합교육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현재 두 사업 모두 예산을 전혀 못 쓰고 있다. 예견된 집행 부진 눈감은 정부·여당2025년까지 160조원을 쏟아붓는 한국판 뉴딜 사업은 문재인 정부가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후반기 역점 사업이다. 국정 전반기의 캐치프레이즈가 ‘소득주도성장’이었다면, 후반기는 한국판 뉴딜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러다 보니 여당 의원들이 한국판 뉴딜 ‘딱지’가 붙은 사업에 대해서는 졸속 예산 편성에도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판 뉴딜은 지난 5월 논의가 시작돼 7월 14일 확정·발표됐다. 이 사업들이 포함된 3차 추경은 6월 3일 국회에 제출돼 7월 3일 처리됐다. 사실상 논의와 예산 편성이 동시에 이뤄진 셈이다. 엄밀한 예산 편성이나 심사가 애초에 불가능했다는 평가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조차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추경 성격상 올해 집행될 수 있는 사업들로 해야 한다”며 “예산을 우선 반영하고 보자는 식은 향후 역효과가 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 사업 예산은 대부분이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예산편성에 불참한 가운데 거대 여당은 일방적으로 3차 추경을 처리했다. 통합당은 “숫자로 밀어붙이는 추경 편성에 동참할 수 없다”며 예결위 조정소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장외에서 “중장기 사업인 한국판 뉴딜 사업을 굳이 3차 추경에 급하게 편성하는 건 정치적 목적과 예산 부풀리기의 목적이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부처 역시 사업의 집행 가능성을 따지기보다는 예산 밀어넣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집행률이 저조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추 의원의 공식 질의에 대부분 부처는 “코로나19로 인해 집행이 늦춰지고 있다”거나 “남은 기간 내에 빠르게 집행하도록 하겠다”는 답변만 내놨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