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후지쓰 ‘재택실험 성공’…사무실 절반 줄인다

입력 2020-09-10 17:31
수정 2020-09-25 16:24

일본 정보기술(IT)업체 후지쓰의 도쿄 시오도메 본사 빌딩 대부분은 지난 7월부터 텅 비어 있다. 8만여 명의 사무직 전원이 재택근무를 하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구글 등 디지털플랫폼 기업 중 전면적인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곳이 있지만, 연공서열 조직문화가 강한 제조업 기반 일본 대기업의 전직원 재택근무는 일종의 ‘실험’으로 여겨졌다.

후지쓰의 근무방식은 재택을 기본으로 하면서, 소비자 상담과 온라인 회의 등을 할 수 있는 위성사무소 250개를 설치해 ‘일하고 싶을 때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시스템이다. 사무실이 필요없어졌기 때문에 후지쓰는 본사를 포함해 현재 120만㎡인 사무실을 2022년까지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위성사무실은 공유오피스를 임차하는 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모리카와 마나부 후지쓰 총무·인사담당 선임디렉터는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행 2개월 동안 대부분의 업무가 원활하게 이뤄졌다”며 “직원들이 핵심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이 16% 늘었다”고 설명했다.

8만여 명의 직원이 출근하지 않고도 회사가 돌아가는 건 지난 10년간 단계적으로 재택근무를 확대하며 축적한 기업문화를 인공지능(AI) 시스템이 뒷받침하고 있어서다. 후지쓰가 개발한 AI는 직원의 문서 및 이메일 제목, PC 이용 상황 등을 자연언어처리기술과 지식처리기술을 활용해 빅데이터화한다. 이를 통해 직원 개개인이 현재 어떤 일을 누구와 얼마의 시간을 들여서 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업무 상황을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도 활용된다. 모리카와 선임디렉터는 “직원들이 최적의 상태에서 일하면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시행하는 제도”라며 “직원 개개인의 성과를 측정하고 있어서 생산성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지쓰 직원들 "원할 때, 원하는 곳서 일하니 성과 더 올라"후지쓰의 전면 재택근무 시행에 따라 앤드루 케인 해외 미디어 담당자도 지난 7월부터 도쿄 본사로 출근하는 대신 자택과 일본 전역에 250여 개가 있는 위성 사무실에서 일한다. 근무시간도 완전히 바뀌었다. 팀장에게 미리 알리고 원하는 시간에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미국·유럽 지역 직원이나 미디어 담당자들과 면담이 있는 날은 낮에 쉬고 밤에 일하는 식이다. 2010년 처음 재택근무 제도를 시범 도입한 후지쓰는 대상을 점점 확대해 2017년 4월 정식 근무제도의 한 형태로 정착시켰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재택근무 비중을 75%까지 늘리고 7월 전 직원으로 확대할 수 있었던 것도 10년간 운영해온 제도이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를 전 직원으로 확대한 건 ‘생산성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통계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직원의 80% 이상이 ‘재택근무를 계속하고 싶다’고 희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취임한 도키다 다카히토 후지쓰 사장도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적극적이었다. 도쿄공업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시스템엔지니어 출신인 도키다 사장은 2017년부터 약 2년간 영국 런던에서 후지쓰의 글로벌 전략을 담당했다. 런던에서 전 세계 411개의 후지쓰 계열사 직원들을 지휘하면서 인사제도를 통일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론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 한 명, 한 명의 근무 상황과 성과를 시각화한 AI 시스템을 갖춘 것도 후지쓰 같은 대기업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할 수 있는 비결이다. 직원 2000명을 대상으로 AI 시스템을 시범운영한 결과 사내 회의와 의사소통 방식이 문제로 도출됐고, 이를 개선했더니 직원 한 사람이 하루에 43분의 업무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전체 업무시간에서 핵심 업무에 투입하는 비중을 16%포인트 더 높였다는 게 후지쓰의 설명이다.

직원들에게 재택근무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것은 자칫 ‘언제 어디서나 일해야 하는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재택근무가 초과 근무를 유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후지쓰는 PC 업무시간과 로그인·로그오프 시간을 자동으로 기록하는 이중 장치를 도입했다. 직원이 초과 근무를 하면 즉각 팀장에게 경고 메일이 날아간다. 직원들끼리 온라인 회식을 자주 여는 등 소통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도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후지쓰의 실험은 실적으로 입증받고 있다. 연 매출은 4조엔 안팎을 유지하면서 영업이익이 2018년 1302억엔에서 지난해 2114억엔으로 62% 늘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일본 기업 대부분의 실적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지만 후지쓰의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2018년 6548엔까지 떨어졌던 주가도 지난 7월 31일 1만4795엔으로 20여 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