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쟁으로 시작한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 갈등으로까지 발전하더니 이제는 다른 국가들을 각각 자국 중심으로 줄 세우기까지 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의 오랜 혈맹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경제적, 군사적으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강화해왔다. 중국과는 1980년대 중국 경제 개방화 이후 양국 간 무역을 확대·강화, 한국 무역에서 대중(對中) 무역이 25% 이상을 점할 정도가 되었다. 이에 비해 대미 무역은 10% 정도에 지나지 않아 무역만 놓고 보면 대미 무역에 비해 대중 무역의 중요성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를 근거로 주미 한국대사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식으로 미중 대립에서 한국이 취사선택 가능한 것처럼 발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북한과 군사적 대치 상태에 있으며, 6·25 이후 주한미군이 주둔해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한국 안보의 대미 의존성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경제에서 대미와 대중 관계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은 대외지향적 성장정책을 추구해왔다. 해외시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어 중국 시장의 중요성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의 중국 수출품은 부품·소재가 중심이다. 한국의 부품·소재가 중국 산업 발전구조에 빌트인(built-in) 돼 중국 산업의 생산 및 수출 증가와 더불어 대중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부품·소재가 대중 수출을 늘릴 수 있는 핵심적 요소는 당해 산업에서의 기술적·가격적 우위다. 여기서 한국 기업의 중국 대비 기술적 우위의 원천이 미국, 일본 등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중국보다 한 발 앞서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 이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부품·소재 경쟁력을 높였기 때문에 대중 수출이 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이들 부품·소재 수입품을 끊임없이 국내 대체화하고, 나아가 한국의 부품·소재 수출시장마저 빼앗으려 들고 있다. 한국 기업이 조금이라도 방심해 기술력이나 가격경쟁력에서 빈틈을 보이면 중국 수출도 막히고 다른 수출 시장도 빼앗기게 된다.
요컨대 한국 부품·소재의 대중 수출은 다른 경쟁국 대비 기술적·가격적 우위 및 인접국이라는 어드밴티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기업에 의해서건 다른 경쟁국에 의해서건 그 우위가 깨지는 순간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지위는 상실된다. 일본 기업은 한국 기업에 비해 평균적으로 기술력 우위지만 한국의 대중 수출 품목에서는 기술과 가격경쟁력을 포함한 종합적 경쟁력이 한국이 일본에 앞서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대중 수출이 가능한 구조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천적 기술 보유국인 미국의 기업이나 연구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지금 미국은 중국 기업이 더 이상 미국 첨단기업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하고 있다. 심지어 기술 전파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중국인 유학생까지 차단하려 한다. 한국이 미국을 거부하고 중국 편에 서는 순간 한국 기업도 미국 기술에의 접근이 어려워지고, 첨단기술을 비롯한 한국 기술의 우위성은 빠르게 약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중국 시장 점유율도 급격히 축소될 것이다.
일본이 미국 편에 서는 것은 미국의 군사력이 중국을 압도하는 관계로 안보상 유리하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일본 기업의 높은 기술력을 유지함에 있어 미국의 원천기술을 직·간접 활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이 필요로 하는 높은 기술을 일본 기업이 보유하는 한 중국 기업은 일본 기업의 부품·소재, 발전설비를 외면할 수 없다.
이 같은 관계는 한·중 간에도 성립된다. 물론 한중 관계를 긴밀하게 발전시켜가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의 높은 군사력, 산업기술력, 자유 시장 가치를 고려할 때 한국의 협력국가 우선순위에서 미국과 중국을 저울질하는 건 어리석은 노릇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