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중국 통치자 시진핑은 ‘정치귀족’ 집안 출신이라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많다. 집권 시기가 2012년 12월과 11월로 거의 같다. 나이도 아베 66세, 시진핑 67세로 비슷하다. ‘전후(戰後) 콤플렉스’를 딛고 자국의 국제위상 강화를 강력하게 꾀해 온 것도 닮았다. 다른 점은 추진 방법이다. ‘전랑(늑대)외교’라는 작명(作名)을 스스로 할 정도로 호전성(好戰性)을 노골화한 시진핑과 달리 아베는 노회한 전략과 전술로 일본의 대내외 입지를 다졌다.
최근 사임을 발표한 아베의 ‘8년 치적’을 놓고 주요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이 “꽤 잘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베가 역대 최장 기간 재임하며 일본의 정상화를 위해 분투했다는 사설(‘아베의 유산’)을 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아베의 유산이 허비돼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사설로 대놓고 찬사를 보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아베는 일본을 어떻게 바꿨나’라는 기사에서 일본의 장기적 국익을 위해 핵심 지지층의 반발도 회피하지 않는 ‘결단의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과거사 등 외교 현안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쳐 온 그를 ‘공공의 적(敵)’으로 여기는 한국인들에게는 떨떠름한 일이지만, 아베가 칭찬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해외 전문가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은 “책임 있는 국정을 위해 개인적 신념과 가치관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았다”는 점이다. ‘통상마찰이 커지자 아베의 일본은 문호를 열었다’는 제목의 지난 3일자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은 아베의 정치적 변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돌아봤다.
“취임 당시의 아베는 콧대 높은 국가주의자였고 자유시장주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전임 총리가 미국 캐나다 호주 베트남 등 11개국과 시작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비판했다.” 그랬던 아베가 적극적인 TPP 추진으로 돌아섰고, 도널드 트럼프 취임 후 미국이 협상에서 뛰쳐나가자 남은 나라들을 규합해 TPP 협정 조인을 이끌었다. 다른 나라들이 외국인 근로자에게 빗장을 걸어 잠그던 때에 되레 문턱을 낮췄다. ‘저출산 초고령화’로 줄어드는 인력을 해결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가 돌변한 것은 ‘잃어버린 20년’ 처방전인 ‘아베노믹스’를 위해서였다. 20년 동안 재정을 화수분처럼 퍼부었음에도 기력을 잃은 내수경제가 살아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해외시장 확대로 돌파구를 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TPP를 성사시키려면 그동안 철저하게 보호해 온 국내 농산물시장을 개방해야 했다. 집권당의 핵심 표밭이었던 농민들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설득해냈다. 《인습타파주의자 아베와 새로운 일본》이라는 책을 막 펴낸 미국의 일본 전문가 토비어스 해리스가 아베를 ‘전략적인 현실주의자’로 부르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친미 동맹국가’ 일본에 중국이 허튼 시비를 걸지 못하게끔 ‘자유시장경제 국가’ 정체성을 분명하게 한 것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패권적 행태를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개념을 맨 먼저 주창하고,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협력체제를 이끌어낸 것도 아베의 숨은 치적이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필요한 교류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올초 중국이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큰 혼란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의약품 등 지원물자를 보내 중국인들의 박수를 받았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적 수모를 당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그의 호텔로 찾아가 가장 먼저 눈도장을 찍는 등 적극적인 구애(求愛) 행태로 ‘아첨꾼’이라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런 그의 행동을 ‘국제기반 강화를 위한 노회한 외교’로 봤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의 미국이 통상 분야에서 일방주의로 선회할 때 ‘다자주의의 보루’ 역할을 해낸 것을 아베의 대표 치적으로 꼽았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세계 10위권 경제 국가인 한국에 대해서만은 ‘국가주의’를 고집하며 갈등을 일으켰는데도 다른 ‘업적’에 묻히는 분위기다. 왜 이렇게 된 건지, 우리의 리더십은 괜찮은 건지 등 화두(話頭)로 틀어쥐어야 할 게 많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