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도 윤희숙도 “비정규직 임금, 정규직보다 더 주자”는데…

입력 2020-09-07 17:12
수정 2020-09-25 15:49

“일자리가 불안정한 비정규직에겐 금전적 보상을 고민해야 합니다.”(윤희숙 국민의힘 경제혁신위원장) “경기도 공공부문만이라도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하겠습니다.”(이재명 경기지사)

정치권에서 비정규직에게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앞다퉈 터져나오고 있다.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정을 경제적으로 보상해 정규직과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일각에선 비정규직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최저임금의 무리한 인상 때처럼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우대임금’ 화두 꺼낸 與7일 경기도와 국회에 따르면 이 지사는 내년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한 우대임금제도 도입을 확정하고 ‘공정수당’ ‘고용안심수당’ 등의 제도 명칭을 검토하고 있다. 비정규직에게 주는 퇴직금 성격의 보상이자 취업지원금이다. 대상은 경기도청과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의 기간제근로자 2000여 명. 퇴직할 때 기본급의 5%를 주되 근무기간이 짧을수록 지급률을 높여 최대 10%까지 적용한다.

이 지사는 지난 7월 “같은 일을 한다면 직장이 안정적인 노동자와 불안정한 노동자 중 누구에게 더 많은 임금을 줘야 할까”라며 ‘비정규직 우대임금제’ 화두를 던졌다. 이 지사는 “지금은 불안정한 노동자에게 임금을 오히려 덜 주고 있는데 이런 ‘중복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이미 관련 입법이 발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4일 비정규직 우대임금 패키지 4법을 대표발의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비정규직 처우를 정규직보다 우대하기 위해 임금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비정규직에게 보상금 성격의 임금을 더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긴다. 야당도 “비정규직 더 줘야”‘비정규직 우대임금제’가 차기 대선에서 여야의 핵심 비정규직 공약으로 등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전체 임금근로자 중 36.4%인 748만 명.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최근 “비정규직에 대한 상설위원회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불안정 고용 보상수당으로 총임금의 10%를 임시근로자에게 지급한다. 스페인엔 근로계약 종료수당(총임금의 5%)이 있고, 호주는 임시직의 기본급이 정규직보다 업종별로 15~30% 정도 높다.

야당도 비정규직 우대임금을 통한 고용유연성 확보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계하는 경제혁신위원회는 △같은 사업장에 근무할 경우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보수 지급 △비정규직 2년 후 정규직 고용 의무 해제 등을 노동분야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윤 위원장은 “정규직은 고용 안정성이 있지만 비정규직은 경기가 나빠지면 위험해질 수 있다”며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보수를 일정 부분 더 주는 방식의 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에게는 금전적 보상을 해줘 고용불안정을 감수하게 하고, 기업 입장에선 해고를 쉽게 해 고용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최저임금 시즌2’ 우려도시장에서 형성된 임금 수준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비정규직이라고 무조건 임금 보전을 해준다는 것은 맞지 않는 잣대”라며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직원에게 더 많은 보수를 주는 식으로 기업들이 각자 생산성 향상에 부합하는 임금체계를 가져가면 된다”고 했다.

현재 비정규직의 처우가 열악한 것은 정규직 과보호로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크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비정규직에게 임금을 더 주고도 기업들의 총인건비 수준이 유지되려면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노사가 타협해 해결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풀기 쉽지 않은 문제다.

선의로 시작된 제도가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현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면서 개인의 급여는 높아졌지만 일자리 수는 줄어든 것처럼 취약계층이 피해를 볼 것이란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직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면 고용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온다”며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일자리 자체가 줄거나, 국가 재정 부담이 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