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국내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으로 설립된 보구녀관은 이화의료원의 전신(前身)이자 뿌리입니다. 약자를 보살핀다는 보구녀관의 핵심 가치를 되새기고 역사로 남기는 작업을 이끌 수 있어 큰 영광입니다.”
지난해 복원 작업을 마치고 올해 새롭게 문을 연 보구녀관의 초대 관장으로 이달 1일 부임한 김영주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56·사진)는 부임 이튿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보구녀관은 1887년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국내 최초의 여성 전문 의료기관으로, 남성 의사에게서 진료받지 못했던 당시 여성 환자를 돕기 위해 설립됐다. ‘여성을 보호하고 구한다’는 의미의 보구녀관(普救女館)이란 이름은 1888년 고종이 하사한 병원명이다.
김 관장은 “보구녀관은 설립 이래 1년에 3000명이 넘는 여성 환자를 치료하며 국민 건강에 큰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1900년 한국인 최초의 여성의사 박에스더(김점동) 배출, 1903년 국내 최초의 간호원양성학교 설립 등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복원된 보구녀관은 이 같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박물관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 마곡동 보구녀관엔 구한말 당시 사용된 의료기기 등 시설이 복원돼 있다. 건물은 보존돼 전해지고 있는 설계도를 기반으로 재건됐다. 김 관장은 “직접 방문하지 않은 분들과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보구녀관을 소개하는 유튜브 등 영상 자료도 곧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33년 전 문을 연 보구녀관은 서울 정동에 있었다. 복원된 보구녀관은 지난해 서울 마곡동에 새로 건립된 이대서울병원 바로 옆에 지어졌다. 김 관장은 “역사의 풍파를 겪으면서 정동 부지엔 보구녀관이 그곳에 있었다는 비석만 하나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라며 “국내 최초의 여성병원이라는 뿌리를 단단히 기억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여성 전문 병원으로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최신 병원인 이대서울병원 옆에 보구녀관을 지난해 2월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김 관장은 조산(早産)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의사다. 세계조산학회(PREBIC) 아시아-오세아니아지부 대표를 지내고 현재는 PREBIC 이사로 활동 중이다. 20대 때 전공의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일곱 번이나 조산으로 아이를 잃은 환자를 보고 조산 분야 연구에 매진하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이 같은 전공 배경을 설명하던 그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보구녀관의 관장으로 부임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더 감회가 깊다”고 했다. 김 관장은 “구한말 당시엔 보구녀관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가 한반도 내 다른 대부분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보다 많았다”며 “산부인과 의사로서 그동안 봐온 수많은 고위험 여성 환자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