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가 많이 모여 있는 키르기스스탄의 싸이말루이 따쉬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 두 사람이 춤을 추는 듯한 그림이 있는데, 그 앞에 서니 주변의 다른 그림들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 그림만 보이는 겁니다. 그림과 제가 하나가 되는 체험이었죠. 이를 통해 ‘우주 전체가 하나’라는 메시지가 그림에 담겨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선사인들이 남겨놓은 국내외 암각화를 답사해온 일감 스님(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사진)이 암각화 명상록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불광출판사)를 출간했다. 오는 15~21일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암각화 탁본 7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회도 연다.
문자가 없던 시대, 고대인들이 바위와 동굴에 사람과 동물, 기하학적 무늬 등을 새겨놓은 것이 암각화다. 일감 스님은 2005년 수묵화가 김호석 씨와의 인연으로 경북 고령 장기리 암각화를 처음 본 뒤 늘 마음에 암각화를 품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2016년부터 세계적 암각화 분포 지역인 러시아 연방의 알타이공화국, 몽골,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 ‘범알타이 권역’을 10여 차례 탐방하며 탁본을 뜨고 암각화에 담긴 고대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체감 온도, 텐트를 날려버리는 바람을 견디며 해발 3000m의 고산지대에서 고대인의 흔적을 만나는 과정은 지난했다. 고대인들이 남긴 그림의 뜻을 더듬어가는 것은 말길이 끊어진 자리를 찾는 선 수행과 흡사했다.
“암각화는 종교화라고 할 수 있어요. 암각화가 있는 곳은 성소(聖所)이거나 제단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암각화에서 샤먼은 대개 동물과 함께 등장하는데 상반신만 그려놓았거나 동물과 중첩되게 해놨어요. 사람과 동물의 영혼이 중첩돼 있다는 뜻이죠.”
책에는 암각화를 처음 만난 순간의 떨림과 감격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시와 에세이가 탁본, 답사현장의 장대한 풍경 사진들과 함께 실려 있다.
“암각화는 안목을 갖추고 깨어 있는 사람들을 기다려 하늘이 감춰놓은 비장(秘藏)의 그림입니다. 삶의 고통을 이겨냄은 물론 마침내 고통이 없는 세상, 즉 낙원으로 향상하고자 하는 의지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킨 예술이자 영혼의 성소였죠. 그림이 새겨진 암석을 가져올 수 없어서 탁본과 함께 그 뜻을 마음에 담아왔습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