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동남아 교통혁신 일군 그랩, 핀테크로 금융격차 해소"

입력 2020-09-06 15:51
수정 2020-09-06 18:24

“지금까지 공유차량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교통 혼잡 해소에 집중해왔습니다. 이제는 핀테크로 금융 격차를 해소하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루벤 라이 그랩파이낸셜 대표(사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동남아인의 70% 이상이 은행 계좌도 없는 금융소외계층”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랩파이낸셜은 ‘동남아의 우버’라 불리는 공유차량 업체 그랩의 핀테크 자회사다. 라이 대표는 월트디즈니에서 신사업 개발 업무를 맡다가 2015년 그랩에 합류한 이후 2018년부터 그랩파이낸셜 대표를 맡고 있다.

그랩은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콜택시 앱으로 출발했다. 간편결제 서비스 ‘그랩페이’를 기반으로 2018년 그랩파이낸셜을 분사한 이래 금융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카카오가 2017년 카카오페이 분사 이후 은행, 보험, 증권 등으로 금융사업을 확대해 나간 것과 비슷한 경로다. 라이 대표는 “동남아 대다수 사람의 유일한 자산인 현금은 0%대 금리와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랩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6개국에서 한국의 전자금융사업자와 같은 ‘e-머니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라이 대표는 “결제 중심이던 사업을 보험·대출·자산관리로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 대표는 “모바일 앱을 통한 자산관리 서비스는 ‘금융의 민주화’”라고 말했다. 그랩파이낸셜은 지난 2월 싱가포르의 자산관리 핀테크 업체 벤토인베스트를 인수해 ‘그랩인베스트’를 출시했다. 자산관리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금융소외계층이 타깃이다. 지난달 5일에는 소액투자 솔루션인 ‘오토인베스트’도 출시했다. 결제할 때마다 자동으로 최소 1싱가포르달러(약 870원)부터 투자할 수 있다. 그는 “투자 경험이 없고, 소액으로 쉽고 간편한 투자를 찾는 사용자를 타깃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핀테크 산업은 이종 산업 간 제휴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랩은 지난해 마스터카드와 제휴해 현금 충전식 선불카드를 출시했다.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은 동남아에서 많은 사람이 그랩을 통해 처음으로 카드를 발급받았다. 전 세계 마스터카드 가맹점이라면 어디서든 결제가 가능하다. 싱가포르에서는 올해 대형 통신사 싱텔과 손잡고 인터넷전문은행에 도전장을 냈다. 라이 대표는 “싱가포르는 글로벌 금융 허브임에도 싱가포르인의 3분의 1이 투자 경험도 없고 대부분이 금리가 연 0%에 가까운 요구불예금에 자산의 대부분을 예치하고 있다”며 “전체 인구의 40%에 달하는 금융소외계층을 위한 쉽고 편리한 금융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대다수 국민이 은행 계좌와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금융소외계층을 위한 서비스의 확장 가능성은 크다고 봤다. 라이 대표는 “한국같이 대다수의 사람이 금융 혜택을 받는 국가에서도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그랩은 자체 신용평가 모델도 운영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 4개국에서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운전자금 대출도 하고 있다. 라이 대표는 “동남아 지역 소상공인의 80%가 대출이 필요하지만 기존 금융권에서는 대출을 받을 수 없다”며 “그랩 플랫폼에 축적된 막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용평가부터 대출에 이르는 과정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과의 협력 확대 가능성도 열어뒀다. 라이 대표는 “현재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 등 제휴하고 있는 여러 한국 기업 중 금융사는 미래에셋뿐”이라며 “동남아 지역에서 기술을 활용한 혁신 금융이라는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업체와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