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金)’ 칭호를 얻은 가상자산 비트코인이 ‘진짜 금’에 발목이 잡혔다. 각종 호재에도 불구하고 금 시세가 주춤하자 덩달아 약세를 보이는 모양새다.
과거 비트코인은 전통 금융시장과 별개의 움직임을 보이며 ‘대안 자산’의 일종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금과 커플링(동조화)되며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많은 기관투자가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지만, 가상자산 시장에 쌓이는 호재가 시세에 반영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금 시세와 커플링된 비트코인업비트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비트코인 시세는 연중 최고점인 1438만2000원을 기록했다. 올해 최저점인 548만9000원 대비 약 2.62배로 상승한 금액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각국 중앙은행이 돈을 풀기 시작하며 막대한 유동성이 시장에 공급됐기 때문이다. 미국 통화감독청(OCC)이 은행들의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를 허용하고, 마이크로스트레티지가 나스닥 상장사 최초로 300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수하는 등 여러 호재도 나왔다.
여기에 치솟는 국제 금 시세가 기름을 부었다. 국제 금 시세는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인한 유동성 혜택으로 지난 3월 이후 약 40% 가까이 상승했다. 지난달 6일에는 사상 최초로 온스당 2000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비트코인과 금의 지속적인 동반 상승은 두 자산 간의 강력한 동조화 현상을 만들어 냈다. 니콜라오스 파니지르조글루 JP모간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국면 이후 늘어난 안전자산 선호 현상과 관련해 “연령대가 높은 투자자들은 금을, 젊은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사들였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지난달 11일 금 선물 시세가 일시적으로 2000달러 선을 반납하며 약 5개월 만에 조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8일 다시 2000달러 선을 회복했지만 재차 무너져 1920~1970달러 선 내외에서 조정받으며 횡보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 사이 비트코인도 하락세를 나타내며 지난달 27일 1324만5000원까지 주저앉았다. 열흘간 약 8% 가까이 하락하며 그동안의 상승분을 상당 부분 내준 것이다. 쌓이는 호재…디커플링 가능할까지난달 27일 미 경제지 블룸버그는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가 ‘비트코인 인덱스 펀드’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피델리티 측은 해당 사안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지만, 업계는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세계 최대 규모의 비트코인 펀드를 운용하는 미국 기업 그레이스케일은 지난 2분기에만 9억달러(약 1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유치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 분기 최대치의 2배가량에 해당하며 대부분의 투자자가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은 이 같은 호재가 쌓이는 것을 지켜보며 금 시세와의 디커플링(동조현상이 사라지는 것)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당장은 금 시장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지만, 어느 정도 임계점을 넘기게 되면 금 시장과 별개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