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중 갈등 속 한국이 있어야 할 곳

입력 2020-09-04 17:57
수정 2020-09-05 06:49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한국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은 ‘반중(反中) 블록’에 한국을 끌어들이려 하는데 중국은 한·미 동맹의 틈을 벌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다. 그런 만큼 누가 봐도 선택은 분명해 보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중국은 한국을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질서의 ‘약한 고리’로 여기는 듯하다. 최근에도 그런 오해를 부를 만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29일 괌에서 열린 미·일 국방장관 회담과 그에 앞서 22일 열린 한·중 고위급 외교안보 회담이 그런 사례다.

당초 미국은 한·미·일 3자 국방장관 회담을 제안했다. 회담에선 북한과 중국의 위협 억제가 논의됐다. 그런데 한국은 불참했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나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회의에 다녀오면 자가격리를 해야 해서 안 갔다는 옹색한 해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 회담이 열리기 1주일 전,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부산을 찾은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4시간 넘게 회담했다. 코로나19 사태 후 첫 중국 고위급 인사의 방한이었다. 우리 정부가 의도했든 아니든 한국이 미국과 일본을 멀리하고 중국과 가까워지는 모양새가 연출된 것이다.

지난해 한·일 수출통제 갈등 때 우리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파기했을 때도 미 관가와 민간에선 “중국과 러시아, 북한만 좋은 일”이란 격앙된 반응이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달 31일 ‘미·인도 전략적 파트너십 포럼’에서 미국 일본 호주 인도로 구성된 일명 ‘쿼드(Quad·4자 협력체)’를 국제기구로 만들 뜻을 밝혔다. 또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까지 포함해 ‘쿼드 플러스’로 확대할 뜻도 시사했다.

‘쿼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1월 첫 아시아 순방 때 인도태평양전략이란 이름으로 공식화한 아시아 정책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의 지배, 항행의 자유를 공유하는 나라들을 묶어 중국의 세력팽창을 막겠다는 구상이다. 일각에선 쿼드 플러스가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쿼드가 외교안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EPN은 경제 쪽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한 공급망을 짜려는 의도다.

문재인 정부는 대부분 서방국가가 비판하는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과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등에 대해서도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북한에 대한 중국의 발언권 등을 고려한 ‘외교적 줄타기’ 측면이 있지만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의 ‘친중 성향’과도 무관치 않다고 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12월 베이징대 강연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비유하고 한국을 “작은 나라”로 칭하면서 “그 꿈(중국몽)에 함께하겠다”고 해 논란이 됐다.

문제는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뿐 아니라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도 정강정책에서 집권하면 강력한 대중 압박정책을 펴겠다고 예고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중국 편을 드는 건 물론이고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기도 갈수록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이수혁 주미대사가 지난 6월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나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때 미 국무부는 이례적으로 논평을 냈다. “한국은 수십 년 전 권위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때 이미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 내에선 이런 분위기가 강해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기억해야 할 건 한국은 미국이 확립한 국제질서에서 한·미 동맹을 토대로 번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아니라 미국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 법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트럼프와 바이든, 누가 돼도 '중국 때리기'올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중 누가 당선돼도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17~20일 전당대회 때 확정한 정강정책에서 환율 조작, 불법 보조금, 지식재산권 절도 등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으로부터 미국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보장, 대만관계법 지원, 홍콩인권법 등을 철저히 집행하겠다고 했다. 경제, 안보, 인권 등 전방위에서 ‘중국 압박’을 약속한 것이다. 다만 일방적인 관세전쟁에 기대지 않고, 동맹·파트너와 협력해 중국을 압박하겠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공화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중국에서 미국으로 일자리를 가져오는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고, 미국을 떠나 해외에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엔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의 ‘탈중국’을 부추기는 한편 미국 기업 유출을 막기 위해 ‘관세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경고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조 바이든의 아젠다는 ‘메이드 인 차이나’, 나의 아젠다는 ‘메이드 인 USA’”라며 바이든보다 더 세게 중국을 압박할 것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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