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국민은행 디지털셀프점. 이곳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부스가 아닌 일반 영업점이지만 상담 창구가 없고 ATM 4대가 전부다. 직원은 한 명뿐. 카드나 통장 없이 정맥 인증만으로 본인 인증을 하자 통장·체크카드 발행, 해외 송금 등 대부분 업무가 가능했다. ATM 옆의 수화기를 들자 인근 영업점 직원과 바로 연결됐다.
ATM이 고도화돼 영업점까지 대체하고 있지만 은행들의 고민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모바일 중심으로 금융 환경이 빠르게 재편되면서 수요가 크게 떨어지고 수익도 나지 않는 ‘애물단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3대씩 사라지는 ATM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ATM은 2만752대로 지난 1분기(2만1247대)와 비교해 500여 대 줄었다. 전국에서 ATM이 하루 평균 3대씩 사라진 것이다. 은행권 전체로 넓혀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 ATM은 5만5800대로 6년 전인 2013년(7만100대)보다 20% 줄었다.
ATM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과도한 운영 비용이다. ATM의 판매 단가는 500만원 선이다. 구동 소프트웨어와 부스 설치 비용, 보험료 등을 합해 은행이 최종적으로 구매하는 비용은 1000만원 가까이 된다. 고성능 ATM의 비용은 대당 3000만원에 달한다. 반면 ATM에서 나오는 수수료 수익은 꾸준히 줄고 있다. 현금 사용량이 크게 감소했고, 대부분 금융 업무가 모바일만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은행의 ATM 출금 수수료는 건당 700~800원 선이다. 은행들은 2011년 금융감독원의 수수료 인하 압박에 1000원가량이던 수수료를 일제히 내렸다. 당국 눈치에 수수료를 다시 올리지 못했다. 오히려 ‘편의점 ATM 수수료 면제’를 앞세운 인터넷전문은행과의 경쟁에 수수료 면제 소비자만 늘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부분 ATM 관리는 외주업체에 맡기는데 관리·유지 비용이 워낙 비싸 설치할수록 적자”라고 말했다. 당국 눈치에 ‘속앓이’ATM은 ‘밑 빠진 독’이지만 당국 눈치에 철거도 쉽지 않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지난달 모든 은행의 ATM 실태 파악을 위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현금 사용층을 배려하고 ATM 배치의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지만 사실상 ATM을 없애지 말라는 경고라는 지적이다.
무인점포는 은행권의 고육책이다. 인건비와 각종 영업점 운영 비용을 아끼는 동시에 ATM 숫자를 유지해 당국의 눈초리를 피한다는 계산이다. 신한·국민은행은 각각 1곳의 무인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모두 ‘영업점’으로 분류되지만 인력은 한두 명에 ATM만 배치했다.
소비자 불편을 줄이는 동시에 은행 부담을 낮추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TM 공동 운영이 대표적이다. 4대 시중은행은 지난달부터 ATM 공동 운영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각 은행은 이마트 4개 지점의 ATM을 하나씩 맡아 운영한다. 운영 비용은 은행들이 동일하게 분담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적자를 감수하며 ATM을 전부 유지하는 것은 무리”라며 “공동 운영 ATM 확대 등에 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