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04일(14:1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사모펀드(PEF)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가 결국 두산솔루스 인수를 확정 지었다. 단독 협상 결렬 이후 재협상 끝에 양측이 합의점을 찾는 데 성공했다.
두산그룹은 이번 매각으로 올 한해 숨 가쁘게 진행된 구조조정 국면에서 한숨 돌리게 됐다. 연말까지 예정된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절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스카이레이크가 단독 인수 이후 안정적 동박 공급이 필요하거나 신사업 진출을 고민해온 대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이날 오후 이사회를 열어 두산솔루스를 스카이레이크에 매각하는 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두산과 스카이레이크는 직후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다. 매각 대상은 ㈜두산과 박정원 회장 등 특수관계자 등이 보유한 지분 53%이다. 거래 가격은 약 7000억원이다. 회사 전체 기업가치는 1조3200억원으로 책정됐다.
두산그룹과 스카이레이크는 지난해 연말부터 협상을 진행해 왔다. 스카이레이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1차 확산이 한창이던 연초에 헝가리 현지 공장 실사까지 단행했을 정도로 인수에 열의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두산그룹 측에서 돌연 협상을 결렬하면서 공개 매각에 나섰다. 거래 초반만 해도 롯데, LG 등 대기업과 KKR, 칼라일, TPG 등 글로벌 PEF의 관심이 이어졌지만 두산 측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두산그룹은 스카이레이크과 재협상에 돌입한 끝에 합의에 도달했다. 스카이레이크는 7000억원 규모로 조성 중인 11호 블라인드 펀드에서 일부 자금을 대고, 일부 투자자(LP)들과 공동 투자(Co-investment) 등을 활용해 인수 대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성장성 뚜렷한 전지박…유럽설비 통한 위치적 장점 뚜렷
장기간 협상에도 스카이레이크가 끝까지 협상장을 떠나지 않은 덴 두산솔루스의 미래먹거리인 전지박(전기차 배터리용 동박) 사업의 높은 성장성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전지박 시장이 2018년 7만5000t(1조원 규모)에서 2025년 97만5000t(14조3000억원 규모)까지 연평균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두산솔루스 헝가리 공장의 전지박 생산량은 연간 1만톤 수준이다. 회사측은 이를 오는 2022년까지 2만5000톤, 2025년 약 5만톤까지 증설할 계획이다. 오히려 자금 운용이 어려운 두산그룹보다 PEF하에서 공격적 증설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스카이레이크 측도 인수 직후 최소 약 3000억원 가량을 투자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SK넥실리스(舊, KCFT), 일진머티리얼즈 등 주요 경쟁사들이 연간 3만톤에서 5만톤까지 생산설비(캐파) 증설에 나선 점을 고려하면 다소 늦은 출발이다. 다만 경쟁사들이 국내와 동남아 등에 설비를 보유한 점과 달리 두산솔루스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과 밀접한 유럽에서 설비를 가동 중인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고객사 눈치에 인수 선뜻 못나선 대기업들…소수지분 투자 등도 고려
회사의 사업 중 동박과 전지박 외 OLED 소재(HBL?CPL) 사업의 경쟁력도 국내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에 오른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OLED소재 사업부는 공개 매각과정에서 LG그룹 등 전략적투자자(SI)가 선뜻 인수에 나서지 못한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대부분 매출이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자 등 삼성으로부터 나온 점이 걸림돌이었다. 경쟁사가 두산솔루스를 인수할 경우, 삼성으로의 매출이 급격히 줄 수 있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했던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 고객사들과 비교적 역학관계가 적은 스카이레이크가 경영권을 갖고, 안정적 소재 공급이 필요한 전략적투자자들이 주요주주로 참여해 기업가치를 올리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분야 글로벌 1위사 LG화학 외에도 미래 모빌리티 소재 분야에 공을 들이는 롯데케미칼, 스페셜티 화학 소재 분야 진출을 꾀하는 한화그룹 등이 잠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스카이레이크 입장에서도 전략적투자자 유치를 통해 안정적 고객망을 확보하는 동시에 추후 회수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 매각이 마무리되면서 두산그룹이 채권단에 약속한 1단계 구조조정도 외견상 마무리 절차를 앞두고 있다. 다만 오너일가가 보유한 두산솔루스 지분 상당수가 금융기관에 담보로 잡혀 있어 두산중공업으로 유입될 현금 규모는 아직 미지수다. 결국 실효성보다는 일정부분 책임 분담을 졌다는 명분을 쌓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올 연말까지 마무리를 목표로 추진중인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의 성사 여부와 두산밥캣의 매물 출회 여부 등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인수는 스카이레이크가 단행한 M&A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스카이레이크는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회장이 이끄는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다. 2006년 설립 이후 주로 IT·첨단기술 분야 회사 인수를 단행해왔다.
차준호/김채연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