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IN AUTUMN

입력 2020-09-04 12:01


[박찬 기자] 패션이 가져다주는 문화적 기능은 실로 엄청나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가장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의류’를 갖췄다는 것 아닐까. 그저 몸을 가리는 도구에 불과했던 옷이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는 장치가 된 듯하다. 아무 생각 없이 골라냈던 내 의상이 누군가에게는 첫인상으로 자리 잡는 이유.

그런 과정 속 트렌드는 미학적 정체성을 여실히 증명한다. 오직 인류만이 갖는 ‘유행’이라는 특성을 근거해 때로는 누군가의 모습을 따르기도, 때로는 누군가의 모습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것. 13세기 무렵 스코틀랜드 지방 귀족 문화에서 파생된 ‘체크 패턴(Check Pattern)’ 또한 컬렉션마다 트렌드를 아우르는 대표적 소재다.

‘빅 로고 아카이브(Big Logo Archive)’, ‘애니멀 레오파드(Animal Leopard)’, ‘로맨틱 퍼프(Romantic Puff)’ 등 다양한 디테일과 키워드가 쏟아지는 가운데 체크 패턴은 놀랍도록 꿋꿋한 모습. 특히나 가을, 겨울 패션에는 더없이 풍요롭고 점잖게 젖어 든다. 이에 최근 가을 겨울 컬렉션을 뜨겁게 장식한 체크 패턴 키워드 4가지를 제시한다.

#CHECK-IN SUITS



지금, 우리 눈앞의 옷장을 열어보자. 수많은 옷들 사이에 두고두고 꾸준히 입고 싶은 옷이 있다면 가지런한 셋업 수트일 확률이 높다. 그중에서도 체크 셋업 수트 한 벌이면 도시미와 안정감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것. 자칫 밋밋해지기 쉬운 블레이저와 팬츠에 극적인 패턴을 부여했고, 소재마다 도드라지는 텍스처를 강조했다.

‘브리티시 헤리티지(British Heritage)’의 명가 버버리(Burberry)는 체크 무늬에 대한 해석을 자유롭게 풀이했다. 팬츠, 셔츠, 재킷 모두 각자 다른 규격의 체크 패턴을 활용하며 색다른 연출을 보여준 것.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과 구찌(Gucci)의 체크는 센슈얼하고 화려한 이면을 갖췄다. 각진 어깨 라인을 중심으로 빳빳하게 날 선 긴장감을 피력한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폭넓은 스커트와 좁은 형태의 재킷은 그 역설적인 구성만큼이나 에스닉한 분위기.

#CHECK-IN COAT



칼바람이 속절없이 들어닥치는 가을인 만큼 코트 준비는 미리미리 할수록 좋다. 물론 당연히 코트는 베이직한 컬러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겠지만, 신선한 시도에는 낭만이 배가되는 법. 검은색 코트만 입고 오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트렌디한 체크 무늬 코트를 입고 온다면 이미지 또한 180도 달라질 확률이 높다.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은 누구보다도 패턴에 대한 아트워크적 견해가 강한 디자이너다. 그가 2020 가을 맨즈웨어 컬렉션 때 선보인 체크 코트는 오버 사이징한 테일러링과 금빛 벨트 디테일을 영민하게 재구성했다.

이와 반대로,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은 음울하면서도 무거운 색감으로 체크 패턴을 나열했다. 특히 남성 제품의 경우 이너 셔츠로는 화사한 플라워 패턴, 하의로는 레더 팬츠를 스타일링해 아이코닉 포인트를 갖췄다.

#CHECK-IN SKIRT



스커트는 담백하게 입을수록 근사하다. 평소에 부담스러워서 스커트를 못 입었다면 ‘체크 스커트’는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클래식한 체크 패턴의 분위기로 편안하면서도 에스닉한 실루엣을 귀결한다. 70년대 분위기의 미니스커트부터 보헤미안풍 롱스커트까지 적절히 섞어내 화려한 구성을 보여준다.

토리버치(Tory Burch)와 No.21는 비슷한 기장의 스커트를 다뤘지만 각자 다른 실루엣과 디테일을 담아냈다. 특히 토리버치의 롱스커트는 회색빛 스웨트셔츠 위에 스카프를 묶어내 통일감을 극대화한다. No.21 또한 상하의 모두 비슷한 난색을 갖춘 것이 특징으로 어딘가 모르게 따스하고 정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한국 출신 디자이너 황록(Rok Hwang)은 체크 패턴에 과감한 절개를 되살려 히피 걸을 연상시켰다. 넘실대는 스커트 디테일 덕분일까. 자유롭고 빈티지한 풍경에 빠져 단번에 녹아든 반응. 카키색 스커트와 차가운 색감의 블라우스를 스타일링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CHECK-IN DRESS



언뜻 보면 체크 무늬와 드레스는 서로 동떨어져 있는 관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채로운 컬러감과 디테일을 복각한다면 그 둘은 더없이 화려한 아이템으로 거듭난다. 실제로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은 굵고 선명하게 드러난 패턴을 통해 하이엔드 패션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그만큼 이 무늬가 고급 기성복의 잔향을 뿜어내기 때문.

그 대표적 예시,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의 미우미우(Miu Miu)는 컬렉션마다 진한 향을 머금고 있는듯하다. 계절을 잊고 매번 피어나는 그의 색감은 우아하면서도 고혹스럽다. 특히 이 컬렉션에서 보여준 체크 패턴 드레스는 체크 패턴으로 색을 통제하고 실루엣을 더해 가슴선 및 넥라인을 포인트로 활용했다. 고급스러운 세련미는 덤.

볼드한 실루엣이 돋보이는 Y / Project는 더욱더 컨템포러리한 스타일로 전개했다. 색감 자체는 진중하지만 넥라인과 벨트라인을 커팅해 ‘반전 매력’을 선보인 것. 그 과감하고 대범한 시도로 체크 패턴 드레스에 대한 편견마저 깨지는 순간이다. (사진출처: 버버리, 보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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