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영끌'의 나라가 됐나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09-03 09:25
수정 2020-09-03 09:45

요즘 신문지상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신조어가 바로 '영끌'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으다'를 줄인 말로 최소한의 생활만 유지하고 부동산이나 주식 등에 있는 돈, 없는 돈 죄다 끌어서 투자한다는 말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그야말로 '영끌' 바람이 거세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폭등에 폭등을 거듭하는 부동산 가격과 실물경제가 어떻든 나몰라라하고 연중 최고치를 넘겨버린 증시에, 있는 돈 없는 돈 박박 긁어 투자하는 이들이 정말 주변에 많기는 한 듯하다.

영끌이 특히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 때문이기도 하다. 김 장관은 최근 "영끌해서 집을 사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앞으로 서울과 신도시 공급 물량을 생각할 때 기다렸다가 합리적 가격에 분양받는 게 좋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이들, 특히 30대가 아파트 시장에서 가장 '큰 손'으로 떠오른 것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에서 30대는 5345가구를 매입해 전체 거래 가구의 33.4%를 차지했다. 40대(28.8%) 50대(17.8%) 60대(10.2%)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30대의 매입 비중은 관련 통계를 공표하기 시작한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30대가 부동산 시장의 최대 큰 손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부모 찬스'를 썼든, 가능한 모든 대출을 총동원했든. 어쨌든 '영끌'이라는 단어가 확 와닫는 대목이다. 김 장관은 이들이 안타깝다고 했지만 김 장관의 말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이 정부들어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고 사실 한국에서 부동산 만큼 높은 수익을 올려준 투자도 드물다. 더욱이 그게 서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안타까운 건 집을 대거 사들인 30대보다 스무번 넘게 헛다리 짚는 정책만 대책이라고 쏟아내고 있는 김 장관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부동산 말고 증시에도 요즘엔 '영끌'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코로나로 증시가 급락했던 지난 2,3월에는 '동학개미'라는 이름의 개인투자자들이 영끌식으로 삼성전자 등 주식을 쓸어담더니 요즘에는 이게 공모주 청약으로 번지고 있다. 카카오게임즈가 기업공개(IPO) 를 하면서 실시한 공모주 청약에 무려 59조원에 가까운 뭉칫돈이 몰렸다. 지난 6월 SK바이오팜이 기록한 역대 최고액(약31조원)의 거의 두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청약 경쟁률은 1525대1이라고 한다. 공모 규모가 SK바이오팜의 40% 정도에 불과한 3840억원인데 훨씬 더 많은 증거금이 모인 셈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으면 청약 증권사 시스템 접속이 지연될 정도였다. 연령별 통계는 아직 없지만 20~30대 젊은 투자자들이 공모주 시장에 대거 유입됐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젊은이들이 부동산 주식 등의 투자에 일찌감치 관심을 갖고 재테크에 나서는 것은 나쁜 현상은 아니다. 이런 자산에 대한 관심은 경제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고 본인의 평생 자산관리에 대한 개념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건 요즘 '영끌'에는 어두운 측면도 결코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우선은 '영끌'에 나서는 배경이다. 부동산 매입에 나서는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영원히 내집 마련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집값을 보고 있자면 기가 막힐 정도다. 이제 서울에서는 10억 이하 아파트는 찾아보기 힘들고 강남에서는 웬만하면 20억은 우습다. 이러다 노른자위 중대형이 100억원을 넘지 말라는 보장이 있겠나 싶다.

이 정부 사람들은 집값을 잡겠다는 건지, 올리겠다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집을 파느니 차라리 자리에서 물러난 청와대 수석들을 보면서 앞으로도 집값은 좀체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뉴욕 런던 등 세계 유수의 대도시 집값은 상상 이상으로 비싸고 서울의 집값이 이런 도시들과 비교하면 아직 그리 비싼 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소득 대비 서울의 집값은 이미 적정치를 넘었고 거품이 상당히 끼었다는 분석 역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증시로 몰리는 젊은이들은 지금처럼 저금리에 시중 돈이 많이 풀린 시점이 그래도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는 듯하다. 3천조원이 넘는다는 부동자금이 갈 곳이 없는 만큼 비록 실물경제와의 괴리는 크지만 증시가 당분간 폭락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인 모양이다.

분명한 건, 지금 부동산과 증시에는 거품이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한국의 경제현실은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빈사상태였다. 현 정부는 경기침체를 모두 코로나 탓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런 상태에서 코로나까지 닥쳤으니 우리 경제가 거의 KO 직전이라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그런에 이 와중에 증시가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다는 것은 아무리 풍부한 시중 자금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어불성설이다. 지금 부동산과 증시에서는 어떻게 보면 '공포의 폭탄 돌리기'가 행해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한순간 외부 충격이라도 발생하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금의 자산버블이 위험한 것은 가계와 기업 정부가 모두 빚더미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동산 담보대출 규제를 바짝 조이자 최근 신용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8월 신용대출은 4조원이나 늘어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영끌'이 숫자로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 추경과 퍼주기 복지로 나라 빚은 조만간 GDP대비 50% 선까지도 치솟을 전망이다. 은행 등 예금취급기관이 올해 6월말 기준 국내 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빌려준 대출금 잔액은 1328조원으로 지난 3월말에 비해 70조원 가까이 늘었다. 이같은 분기별 증가폭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컸다.

'영끌'이 유감인 또 다른 이유는 이에 동참하는 젊은이들의 생각 때문이다. 경제는 엉망이고 취직도 어렵고 자영업도 힘들고 하니 부동산 주식에 '몰빵' 이나 해버리자는 심리가 주변에 적지 않다. 착실하게 평생 직장생활을 해봤자 집 한칸 마련하기 힘들고 소비 수준은 이미 높아져 있으니 '인생 별거 있어?' '에라 모르겠다' 심리로 지르고 보는 것이다. 젊을 때 크게 '한건'해서 그냥 평생 즐기며 살자는 식이다.

젊은이들이 이런 심리는 갖게된 것은 이른바 '요즘 세대'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현 정권이 조장한 측면도 적지 않다. 말도 안되는 소득주도 성장으로 일자리를 없애고 몇몇 노동귀족들의 배만 채우는 것도 모자라 인천공항공사에서 보듯이 무리한 비정규직의 정규화를 통해 온갖 부작용과 불공정만을 드러냈다. 소득격차는 확대되고 기업규제로 더욱 더 일자리는 줄고 나라 빚만 늘자 이제는 세금만 줄줄이 올릴 판이다.

요즘 흔히 유행하는 '나라가 이러니 나라도 잘 살자'는 식의 사고가 '영끌'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유감인 것은 '영끌'에는 '거품'이 따르고 이게 언젠가는 터진다는 점이다. 물론 영끌을 통해 내집을 마련하고 주식투자로 '한 건'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안한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성실과 근면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을 만든 대한민국이 어쩌다 '영끌'의 나라가 됐나. 젊은이들의 희망을 앗아버리고 '한탕주의'에 빠져들게 만든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