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사진)이 차기 총리 선출 경쟁에서 굳히기에 들어갔다.
스가 장관은 2일 현재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최대 계파 호소다파(소속 의원 98명)를 비롯해 아소파(54명), 다케시다파(54명), 니카이파(47명), 이시하라파(11명) 등 주요 계파의 지지를 확보했다. 전날 출마를 선언한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과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이끄는 기시다파(47명)와 이시바파(19명)를 제외하면 모든 계파가 스가 장관을 지지하는 것이다. 중견·소장파 의원들로 구성된 스가 지지파를 합하면 자민당 의원 394명 가운데 75%인 294명을 확보했다.
오는 14일 열리는 양원총회에서 차기 총재가 되려면 자민당 의원과 47개 도도부현지부연합회 대표 등 총 535표 가운데 과반인 268표를 확보해야 한다. 스가 장관은 의원들 표로만 이미 과반을 확보한 셈이다. 양원총회 선출 방식은 일반 당원들의 여론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여서 역전극이 펼쳐지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스가가 사실상 차기 총리를 굳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가의 무기는 안정감과 정책의 연속성 보장이다. 2012년 12월 아베 신조 총리 내각이 들어선 이후 줄곧 총리관저의 2인자이자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을 맡아왔다. 아베 총리도 지난 7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스가 총리’의 문제는 ‘스가 관방장관’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절대적 신뢰를 보내고 있다. 스가만큼 자신을 잘 보좌해준 인물은 어디에도 없을 거라는 뜻이었다.
스가가 일본의 새 총리가 되면 부모 후광과 파벌이 없는 또 한 명의 ‘흙수저’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전후 일본 총리 가운데는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재임기간 1972~1974년)가 서민적인 풍모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스가는 일본 동북지방 아키타현의 딸기 농가 출신이다. 고교 졸업 후 무작정 상경해 늦깎이로 학비가 가장 싼 호세이대 야간 법학부에 입학했다. 의원 비서관, 요코하마 시의원을 거쳐 1996년 자민당 공천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2002년 북한 문제를 계기로 아베와 한 배를 탔고 2006년 1차 아베 내각에서 총무성 장관을 지냈다. 아베가 궤양성 대장염으로 집권 1년 만에 사퇴한 뒤에도 그의 곁을 지켰고 2012년 총리선거 출마를 망설이던 아베를 설득해 제2차 아베 정권 출범의 1등공신이 됐다.
2019년 4월 나루히토 일왕의 새 연호 ‘레이와’가 쓰인 액자를 들어 올리며 연호를 발표해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젊은 층이 그를 ‘레이와 오지상(레이와 아저씨)’으로 부르며 사인을 요청할 정도다. 1989년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 ‘헤이세이’를 공표했던 오부치 게이조 관방장관도 훗날 총리가 됐다.
스가 장관은 아베 정권의 경제대책을 승계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날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공식화하는 기자회견에서도 “아베노믹스(아베 정권의 경기부양책)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한·일 관계에서는 악역의 이미지가 강하다. 2013년과 2014년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와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지난해 9월에는 “한·일 관계가 꼬인 건 전부 한국에 책임이 있다”며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판결 때문에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시바와 기시다 후보는 “대기업의 실적 회복이 임금 상승과 소비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아베노믹스의 궤도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시바 후보는 소비세 감세 등을 통한 재정 건전화도 주장하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