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원확대 일단 보류" vs 전공의 "문서화해야 복귀"

입력 2020-09-01 16:02
수정 2020-09-02 01:12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의료정책을 놓고 장기간 갈등을 벌이고 있는 의료계와 정부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원점에서 정책 재논의를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사실상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동네의원으로 구성된 의사협회도 오는 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의·정 갈등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1일 첫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의료정책을 먼저 철회한 뒤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는 것을 명문화하면 즉시 의료현장에 복귀하겠다”고 했다. 박지현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문서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전공의, 전임의, 의대생이 하나가 된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다”고 했다.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고 투쟁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공의, 전임의 파업에 이어 법무부 국립법무병원 의사들도 집단 사직 의사를 밝히는 등 의·정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공무원 신분인 국립법무병원 의사 11명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사회 안전을 위해 일하는 국립법무병원 의사로서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지만 중요 의료정책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침묵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진료현장 복귀를 거듭 요청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정부 약속을 믿고 조속히 진료현장으로 돌아올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31일 기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235명으로 전날보다 13명 줄었다. 전공의들 '젊은의사 비대위' 구성…투쟁 규모 확대
한 발 물러선 정부…丁총리 "의료인 처벌 원치 않아"정부의 의료 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 파업이 12일째를 맞았다. 전임의까지 지난달 24일부터 집단 휴진에 가세해 일선 의료 현장의 혼란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업무 복귀 압력을 받는 전공의들은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전공의, 전임의, 의대생, 의학전문대학원생 등을 규합해 투쟁 강도를 높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이행 여부를 파악하는 현장 조사를 일시 중단하는 등 젊은 의사 달래기에 나서는 한편 정책 전면 철회에 대해선 정부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전공의 “원점 재논의 명문화해야 복귀”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1일 서울 당산동 서울시의사회관에서 젊은의사 비대위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젊은의사 비대위원장을 겸직하는 박 위원장은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첩약 급여화 등은 의료 전문가와의 합의 없이 졸속 추진됐기 때문에 철회해야 한다”며 “이를 문서로 약속한다면 의료 현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성 젊은의사 비대위 대변인은 “정책 합의문에는 의료정책에 더해 전공의 처벌 문제, 국가고시 연기와 관련된 문제들까지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전공의들은 지난달 23일 정세균 국무총리와의 면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료에 참여하기로 한발 물러서면서 협상 타결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고 전공의 10명을 경찰에 고발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30일 대의원회의에 파업 철회를 표결에 부쳤으나 압도적인 표 차이로 파업을 계속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전공의들 사이에서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다. 이에 전공의들은 의료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는 약속을 문서화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복지부 “전공의들, 주장 명확히 해라”복지부는 이날 전공의 집단휴진 현장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현장조사는 정부가 발령한 업무개시명령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처벌하기 위한 기초 조사 성격을 띤다. 일각에선 전공의와의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유화 제스처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이날 “정부는 단 한 명의 의료인도 처벌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협의체를 구성해 정부안보다 더 나은 안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주장을 모두 수용할 뜻이 없다는 것도 내비쳤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보건복지부 공공의료정책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방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은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최고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8개월 이상 논의한 사안”이라며 “이를 정부가 철회하라는 것은 관련법 위반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공의대 설립에 대해선 “국회가 법률을 제정해야만 정책 추진이 가능하고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윤 반장은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은 이미 중단했다”고 말했다. 병원가 “만성·노인 환자까지 위험”전공의·전임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은 외래 진료를 축소하면서 의료 공백 최소화에 나서고 있다. 평소 하루 1만2000건의 외래 진료를 처리하는 서울아산병원은 최근 외래 진료가 10%가량 감소했다. 삼성서울병원의 지난달 31일 외래 환자 수는 7700명으로 평소 9000명보다 15%가량 줄었다.

서울 시내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당장 목숨이 급하지 않은 환자들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동네의원에서 치료가 힘든 환자들”이라며 “진료를 계속 미루다가는 환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사회시민연대 등 12개 시민단체는 이날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복귀 명령을 거부하는 전공의·전임의 등 의료인을 전원 사법처리하고 공공의료를 대폭 강화해 의료체계를 혁신하라”고 요구했다.

박상익/김우섭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