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3월과 8월의 방역전선

입력 2020-08-30 18:15
수정 2020-08-31 00:08
지난봄 우리는 겸손했다. 두렵고 공포스러웠지만 차분하고 이타적이었다. 그 무기로 처음 만나는 바이러스와 싸웠다. 봄의 입구에서 마주친 코로나19라는 낯선 바이러스의 실체를 알기 위해 찬찬히 들여다보려고 애썼다. 자연 속에 잠자고 있던 바이러스를 불러낸 것이 인간의 탐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도 했다. 공장이 멈춘 후 깨끗해진 하늘을 보며 자연의 소중함도 생각했다.

코로나19를 확산시킨 사이비 종교집단에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곧 그들에게도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도 우리의 일부이며 방역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겸손, 이타성, 용기콜센터와 물류센터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났을 때는 코로나19의 피해를 사회적 약자가 더 크게 받는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클럽에서 코로나19가 퍼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리가 이러면 안 된다”는 자성의 분위기가 있었다.

많은 의료인은 대구로 향했다. 기업들은 연수원을 치료시설로 내놓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은경 본부장과 질병관리본부의 헌신에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함께 움직였다. 방역만 한 것은 아니었다. 기회를 포착한 사람도 많았다. 주가가 폭락하자 과거에서 배운 투자자들은 용기 있게 주식시장으로 뛰어들었다. ‘동학개미’라고 불렸다. 그들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뛰어든 건 아니지만 한국 주식시장의 버팀목이 됐다. 그 용기의 대가는 수익률이었다. 지난봄의 겸손과 용기, 절제의 대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좋은 경제 성적표로 돌아왔다.

그러나 8월은 달랐다. 겸손이 사라졌다. 코로나19를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다. 각종 소모임과 대규모 집회로 종교집단은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진원지가 됐다. 그들의 정치적 행동은 정치권의 공방으로 번졌다. 방역전선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의사들은 파업을 택했다. ‘남의 목숨을 걸고 파업을 한다’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밥그릇이 중요하긴 하지만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설득하며 국민을 하나로 모으려 했던 정부도 달라졌다. 자신의 길만을 고집하면서 이해관계자들과 부딪치며 일을 키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치권은 서로의 책임을 물으며 싸운다. 방역의 정치화가 진행되고 있다. 착각 그리고 방심착각에 의한 ‘심리적 면역’도 생긴 듯하다. 이름난 음식점과 술집은 여전히 사람들로 빼곡하다. 주말 백화점에는 주차하려는 차들의 행렬이 이어졌고, 도로엔 정체가 이어졌다. 3월과 달랐다. 1학기 개학을 연기하며 신중하던 교육부도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하고 있다. 고3은 등교하라고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바이러스가 고3은 피해간다더냐”는 항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로 사망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착각 말이다. 한국의 사망률이 낮은 것은 의료 인프라 덕분이다. 이것도 임계치가 있다. 대구에서 코로나가 확산됐을 때는 전국의 의료역량을 집중해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도권이다.

문득 지난봄 미국 뉴욕에서 촬영된 영상 하나가 떠오른다. 뉴욕 인근의 한 섬. 인부들이 수로 같은 것을 파고 있었다. 수로가 아니었다. 장례식도 못 치른 시신을 매장할 공간이었다. 뉴욕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자 묘지 부족에 시달렸다. 그 해결책으로 인근 섬에 매장지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방역 시스템 붕괴가 가져온 결과였다. 위기는 항상 최악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