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5월 발표한 ‘서울 1만 가구 추가 공급’의 핵심인 사당역 복합환승센터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이 부지는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갖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데, 사업의 공공성이 요구되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숫자 위주의 공급대책을 내놓은 정부의 발표와 실제 공급 시기 간에 상당한 괴리가 생길 것이란 지적이다. ○1조원 적자 교통공사…“당분간 연기”
3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는 사당역 복합환승센터 건립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수익성을 강화해 서울교통공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과 사업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해 5월 정부의 수도권주택공급 방안 중 서울 1만 가구 추가공급 계획에 포함된 부지다. 약 1200가구가 공급될 예정으로 가구 수가 가장 많은 구의자양재정비촉진1지구(1363가구)와 함께 대표 사업지로 꼽힌다.
서울교통공사는 적자 해소를 위해 해당 부지를 매각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다. 서울시와 SH공사 등에 매입의사를 타진했지만 부정적인 답변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관계자는 “서울시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땅을 다시 서울시에 넘기고 싶어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한 것”이라고 했다.
사당역 복합환승센터 건립사업은 2009년 처음 추진됐다. 2015년 지구단위지정이 완료됐지만 민자사업에서 공공사업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지연됐다. 서울시는 시유지였던 사업부지를 서울교통공사의 적자 해소 및 재무구조 개선 등을 위해 공사에 출자했지만 정부의 공급대책에 포함되면서 이견이 불거졌다. 서울시 내에서도 수익성과 공공성을 놓고 부서 간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교통공사는 올해 적자가 약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법정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면서 예상 적자규모가 작년의 두 배로 급증했다. 일각에서는 차기 서울시장이 선출될 때까지 재논의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되풀이되는 숫자놀음식 공급대책
정부는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계획의 최종안을 내놓으면서 서울 1만 가구 추가공급 방안을 공개했다. 자양1재정비촉진구역을 포함해 총 19개의 서울 내 자투리땅 등을 개발해 주택공급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당역 복합환승센터 외에도 대부분의 사업이 구체화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다. 총 1000가구로 예정된 동북권 민간부지 활용은 아직 부지 자체가 비공개로 진행 상황이 깜깜이다. 노후공공기관복합화(1500가구)는 서울 내 다수 시설이 대상으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본구상을 마련 중이어서 아직 구체적인 일정을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급가구 수가 가장 많은 자양1재정비촉진구역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여파로 공급시기가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업성이 낮아지면서 후분양이 검토되고 있어서다. 이 사업은 민간(KT에스테이트)과 공공(SH공사)이 함께 행정·상업·업무·주거를 아우르는 복합타운 10개 동을 조성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사업시행인가를 마치고 올해 말 착공을 예정하고 있다. 최종 가구 수는 1063가구(일반분양 631가구, 공공임대 432가구)로 예상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급 일정이 차질을 빚으면 시장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8·4 공급대책’에서 제시한 13만2000가구 공급 목표도 현실성 없는 수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급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 5만 가구와 공공재개발 2만 가구가 수요예측 없이 가정으로 부풀려졌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숫자를 미리 정해놓고 사업지를 찾아 끼워맞추는 식이다 보니 엇박자가 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