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에 분노한 환자들 "파업참여 병원 불매"

입력 2020-08-30 15:03
수정 2020-08-31 01:56

“환자 곁을 떠난 의사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오는데 그 어떤 이유도, 그 어떤 조건도, 그 어떤 명분도 필요하지 않다.”

전공의와 전임의 집단파업으로 암 환자 등 중증 환자들까지 제때 수술받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하자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등 8개 환자단체는 지난 29일 서울대병원 앞에서 이같이 촉구했다. 하지만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30일 정부와 국회, 의료계 등의 요청에도 무기한 파업을 철회하지 않기로 하면서 의료 대란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대학병원, 외래 진료 속속 축소30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내과에 이어 소아과 등도 외래 진료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내과는 31일부터 1주일 동안 외래 진료와 시술 등을 축소하기로 했다. 내과 교수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면서다. 일손이 달리는 소아과 등도 외래 진료 축소를 고민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내과에서도 진료 축소 등을 논의 중이다.

하루에 8500건가량의 외래 진료를 처리하는 삼성서울병원도 전공의, 전임의 파업 영향으로 외래 진료가 20% 이상 줄었다.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다른 병원들도 이달 초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외래 진료를 10%가량 조정한 상태다.

대형 병원은 전공의, 전임의가 빠지면서 교수들이 야간당직을 서기 시작했다. 당직 다음 날은 진료나 수술이 불가능하고 당직 주기가 짧아질수록 피로 누적이 심해진다. 이에 따라 외래 진료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 주요 대학병원의 수술 건수도 절반 정도 줄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내분 전공의, 전임의, 개원의 파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홈페이지를 만들어 파업에 참여한 병의원 명단을 공유하는 등 불매운동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이곳에는 지난 26~28일 2차 총파업에 참여한 병의원 이름이 일부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전공의들이 파업에 참여하는 대형 병원의 책임이 개인병원보다 크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 간호협회 등 의료계 내부에서도 의사들의 불법 파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일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일부 전공의는 “비대위 다수는 파업 중단을 원했지만 박지현 전공의협 비대위 회장이 독단적으로 절차상 불필요한 일선 전공의 대표모임인 임시전국대표자비상대책회의에 표결을 부쳤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일선 전공의들은 정보도, 맥락도 없이 궁지에 몰려 뭉쳐야 한다는 의식으로 과열된 상태였다”며 “정당하지 못한 의사결정 과정, 파업의 결과로 초래될 피해에 대한 책임은 박 회장이 져야 한다”고 했다.

페이스북의 ‘일하는 전공의’ 계정에 글을 올린 한 전공의는 “‘젊은 의사 단체행동’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행동이 의대생, 전임의, 교수, 일선 의사 등을 움직여 한목소리로 올바른 의료정책 수립을 외치도록 한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면서도 “정부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의사협회는 조속한 합의를 통해 파업을 마무리해달라”고 말했다. 정부 “환자 고통 외면한 결정”정부는 전공의 파업에 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3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외면한 결정”이라며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대화를 시도했음에도 이런 결정이 내려져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정부는 생명과 직결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 담당 의료진부터 법적 절차에 나설 방침임을 내비쳤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정부는 어떤 경우라도 국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진료 거부에 따른 환자들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왜 전공의들은 고용이나 신분상 어떤 피해도 봐선 안 된다는 것인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도 “국민 생명과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정당치 않은 결정”이라며 “코로나19로 엄중한 상황에 의사로서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진료현장으로 즉시 복귀해달라”고 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