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대표, 7개월 뒤 성배를 들까 독배를 들까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0-08-30 13:25
수정 2020-08-30 13:27

한국 정당사를 보면 당 대표는 ‘파리 목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간해서 임기를 채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가 지난 5월 이낙연 신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표 경선 출마 여부를 놓고 고민할 때 짚은 바 있듯, 당 대표직은 흔히 ‘독이 든 성배’에 비유된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전신(前身) 정당들 대표는 2000년 이후 38번 바뀌었다. 평균 재임 기간은 6.4개월에 불과하다. 임기 2년을 채운 대표는 정세균·추미애·이해찬 전 대표 등 3명 뿐이다. 임기 2년 가운데 1년을 넘긴 사람은 손학규·김한길 전 대표 밖에 없다. 박상천 전 대표(2003년 9월~12월)는 3개월만에, 정동영 전 대표(2004년 1월~5월)는 4개월만에 물러나기도 했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20년간 24번 바뀌어 대표 평균 재임 기간이 10개월을 넘지 못했다. 임기 2년을 채운 사람은 박근혜·강재섭·황우여 전 대표 등 3명에 그쳤다.

대표가 임기를 못 채우고 자주 바뀌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선거 패배에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한 번, 국회의원 총선거와 지방선거는 2년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 재·보궐선거는 매년 한 차례 치러진다. 그나마 재·보선은 2014년까지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 실시되다가 이듬해부터 한 차례로 줄었다.

선거 패배로 인해 대표가 물러난 사례는 많다. 통합당(전신 정당 포함)의 경우 황교안 전 대표가 ‘4·15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을 비롯해 2000년 이후 대표 10명이 같은 이유로 중도 하차했다. 민주당의 전신 정당인 열린우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던 시절인 2004년 3월부터 2년 3개월 동안 대표가 일곱 번 바뀌기도 했다.

계파 간 다툼도 잦은 대표 교체의 주요 요인이다. 민주당은 2000년대 들어 친노(친노무현)계와 동교동계가, 2010년대엔 친문(친문재인)계와 반문(반문재인)계가 갈등을 벌이면서 대표는 ‘파리 목숨’이 됐다. 2004년 국가보안법 문제를 두고 벌어진 갈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부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한나라당과 협상을 벌인 끝에 국보법을 폐지하는 대신 일부 조항(고무·찬양)을 없애는 선에서 타협했다. 그러나 친노계에서 강하게 반발하면서 의장직을 내려놓았다. 친노 강경파는 이 의장에게 “당을 팔아먹었다”고 비판했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 출마한 문재인·박지원·이인영 후보는 당 대표직을 두고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했다. 미래통합당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박(친박근혜)과 친이(친이명박)계가 지난 17년 간 치열한 다툼을 벌이면서 대표가 희생양이 되곤 했다.

반대로 대표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정치적 체급을 높인 정치인들도 있다. 민주당(전신정당 포함)의 경우 문재인·정세균·손학규 전 대표를 꼽을 수 있다. 통합당은 박근혜·홍준표·김무성 전 대표 등이 대표직을 발판으로 유력 대선주자가 됐다.

지난 29일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이낙연 대표는 향후 7개월의 임기 동안 대선 대세론을 확고히 굳힐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이 대표는 지난 1월 총리에서 물러난 뒤 지지율 하향곡선을 그어왔다. 총리 자리에 있을 때보다 언론의 주목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에 역전 당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그간)직책이 없어 말을 아꼈다”며 “총리는 (내각의) 2인자지만 당 대표는 1인자다. 새로운 이낙연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변신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그 앞에 놓은 과제는 만만치 않다. 이 대표는 당선 직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과 민생 지원, 포스트 코로나 준비, 통합의 정치, 혁신 가속화 등을 자신에게 주어진 ‘5대 명령’으로 꼽았다. 당장 코로나19 사태 대처 능력이 발등의 불이다. 코로나 사태 대응은 1차적으로 정부 영역이지만, 여당 대표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동산 문제도 시급한 과제다. 여당이 7월 임시국회에서 주요 부동산 관련 법안들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만큼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져야 한다.

내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도 이 대표가 책임져야 할 주요 정치적 현안이다. 이 대표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선거는 4월 예정돼 있지만, 시장 후보 선출과 선거 전략을 실질적으로 총괄해야 하기 때문에 패배한다면 책임론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후보를 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민주당 당헌 96조 2항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민주당 소속 단체장의 잘못으로 실시되는 만큼 공천할 명분이 없다. 그렇다고 대선 길목에서 치러지는 제 1,2 도시 단체장 선거에 여당이 공천을 안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당 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공천 여부는 이 대표의 리더십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여당 대표는 대통령의 국정 수행과 동반 책임을 져야 한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이 대표의 대선 지지율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과거 정권 말 각종 악재로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할 때 여당 내에서 청와대에 반기를 든 사례들이 많다.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전략이다. 이로인해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6명의 대통령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5명이 임기말 탈당했다. 이 때문에 이 대표가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다면 청와대와 어떤 관계 설정을 할 지 주목된다. 이 대표는 당선 직후 문 대통령과 가진 전화 통화에서 “국난극복과 국정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뒤 “드릴 말씀은 늘 드리겠다”고 한 부분이 주목된다. 의례적인 것일 수 있지만, 할말은 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 대표에게 대표직은 성배가 될까 독배가 될까. 이 대표도 우리 정치사에서 당 대표들의 명운을 좌우했던 선거 결과, 계파, 임기말을 맞은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문제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낙연 대세론’이 7개월 뒤 어떻게 양태가 될지 여부는 그의 대선 운명을 가르는 1차 관문이 될 것이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