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세계 2위·낸드 5위…SK하이닉스 낸드 '반전 드라마' 가능할까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0-08-29 12:28
수정 2020-10-08 13:28

2분기 시장점유율 D램 30.1%, 낸드플래시 10.7%. 이 숫자들은 세계적인 메모리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의 고민을 말해준다. D램 시장에선 세계 1위 삼성전자(시장점유율 43.5%)와 함께 확실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낸드플래시 시장 상황은 D램과 조금 다르다. 2분기 기준 1위는 삼성전자(31.4%)고 2위는 일본 키옥시아(17.2%, 옛 도시바 메모리)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웨스턴디지털(15.2%), 마이크론(11.1%)에 이어 5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D램과 낸드 사업 온도차는 무엇 때문일까.삼성전자보다 6~7년 늦게 낸드플래시 시장 진출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으로 2001년 탄생한 하이닉스반도체는 2003년 유럽 최대 반도체 기업 ST마이크로와 제휴를 통해 낸드플래시 사업을 시작한다. 당시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와 도시바가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삼성전자는 1997년부터 낸드플래시 투자를 본격화했다. 2001년 도시바(45%)에 이어 26%의 점유율로 낸드플래시 시장 2위를 차지한다. 2001~2002년 반도체 불황기에도 삼성전자는 투자를 주저하지 않았다. 2003년엔 삼성전자가 65%의 점유율로 낸드플래시 세계 1위를 차지한다.

쉽지 않은 경쟁환경이었다. 그래도 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사업 진출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우호적이었다. 2004년 1월 증권사들은 하이닉스에 대해 '매수'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내며 '구조적인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제시했다. 외국계 증권사 메릴린치는 "하이닉스의 EBITDA가 1조6580억원으로 부채상환과 설비투자 6600억원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낸드플래시 관련 ST마이크로, 프로모스 등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이닉스도 기대에 부응했다. 2004년 2분기 낸드플래시의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됐다. 기존 업체들의 견제가 시작됐다. 세계 1위 낸드플래시 업체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 가격을 낮춘 게 대표적이다. 그해 11월엔 세계 2위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설계 관련 특허 3건을 침해했다"며 일본 법원에 하이닉스 일본법인을 제소했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양산 첫 해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3.3%를 기록,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낸드플래시는 하이닉스 실적에 '효자' 노릇을 했다. 아이팟으로 대표되는 MP3 플레이어의 인기와 USB(휴대용저장장치) 보급 영향이 컸다. 2005년엔 큰 손 애플에 2010년까지 2억5000만달러 규모 낸드플래시를 공급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2005년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12.8%를 기록했다. 언론에선 하이닉스를 삼성전자, 도시바와 함께 '낸드 3강'으로 분류했다. 워크아웃 졸업도 가시화됐다. 인텔과 마이크론의 낸드플래시 합작사 설립, 세계 4위 일본 르네사스의 낸드플래시 사업 철수 등 변곡점도 있었다. 가격도 하락과 상승을 거듭했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2006년 17.7%, 2007년 17.0%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세계 3위' 위치를 꾸준하게 유지했다.
2008년 감산과 투자지연 때문에 점유율 10% 밑으로 하락 위기는 2000년대 후반 찾아왔다. 하이닉스는 2003년 낸드플래시 사업 진출 이후 200mm 웨이퍼 기반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며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확대했다. 하지만 그 때 삼성전자 등 경쟁업체들은 웨이퍼 한 장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300mm 웨이퍼 기반 기술 개발에 한창이었다. 하이닉스는 2006년이 돼서야 300mm 웨이퍼 기반 기술연구소를 개소했다. '300mm 공정 관련 한 발 늦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2007년 4분기엔 318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 4년 반 이어온 '흑자 행진'을 마감했다. 전 세계적인 D램, 낸드플래시 '공급과잉'이 발목을 잡았다. 당시 하이닉스의 D램 출하량은 전 분기 대비 7% 늘었지만 평균 판매가격은 35% 떨어졌다. 낸드플래시 역시 57나노 양산 개시와 D램 라인의 낸드플래시 전환으로 출하량은 43% 급증했지만 판매가격은 34% 떨어졌다.

이같은 '위기 상황'은 투자에 영향을 미쳤다. 하이닉스는 2008년 300㎜ 생산라인 확장 등에 3조6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수치는 2007년 4조8000억원보다 25%가 줄어든 수치다.

가격 급락세가 이어지자 투자가 위축됐다. 수익성이 낮은 기존 200mm 라인의 생산 중단과 300mm 신규 라인의 양산 연기가 이어졌다. 2008년 2월 SK하이닉스는 콘퍼런스콜(전화 실적설명회)에서 "충북 청주공장 M11 라인의 낸드플래시 양산 시기를 늦추기로 했다"며 "200mm(8인치) 라인에 대한 추가적인 매각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해 4월엔 "청주 낸드 M9 생산라인의 가동을 3분기까지 중단할 계획이고 300mm 신 공장인 M11도 낸드 전용 라인으로 활용하려 했지만 낸드 생산량을 줄이고 D램의 후공정 라인을 넣을 수 있다"고 밝혔다. 300mm 라인 신규 투자 및 가동은 늦추고 기존 200mm 라인의 생산량은 줄이는 '감산'을 선언한 것이다. 넉달 뒤엔 8월에도 하이닉스가 낸드를 30% 추가 감산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삼성전자는 달랐다. 같은 날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감산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 하이닉스는 대만 파이슨 지분 투자, 뉴모닉스(과거 ST마이크로)와 전략적 협업 강화 등으로 돌파구를 찾았지만 점유율 하락은 면치 못했다. 2008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8.4%로 곤두박질쳤다. 순손실도 1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2009년에도 8.6%를 기록했다. 이 때 SK하이닉스는 세계 3위 자리를 마이크론과 인텔의 합작사인 'IM플래시'에 내주고 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하이닉스가 초창기에 200mm 팹을 활용해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높였으나 금융위기와 치킨게임 등으로 채산성이 떨어진 200mm팹 가동을 종료하며 점유율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두뇌' 역할하는 컨트롤러 기술력 등 '솔루션' 역량 열세하이닉스는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약 12년 간 10% 안팎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2012년 SK그룹에 인수된 이후 사명을 SK하이닉스로 바꾼 이후에도 유독 낸드에서는 반등을 못하고 있다. 낸드플래시 단품 기술력은 세계 1위 삼성전자 등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대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6세대 128단 1Tbit(테라비트) TLC 4D 낸드플래시를 개발, 양산에 나선 게 대표적인 사례다. 2018년 10월 5세대 96단 4D낸드 개발 8개월 만에 삼성전자보다 앞서 128단 4D낸드를 선보인 것이다. 향후 고용량·고사양 시장 선점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약한 고리는 '솔루션'이다. 과거 낸드플래시는 '단품'으로 USB나 MP3 등에 들어갔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단품만 공급되는 게 아니라 낸드플래시의 데이터 처리 순서 등을 결정하는 두뇌 역할의 '컨트롤러'와 컨트롤러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는 '펌웨어'와 함께 '솔루션'으로 고객사에 제공된다. PC나 서버 등에 저장장치로 들어가는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스마트폰,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 등에 탑재되는 UFS 등 컨트롤러를 탑재한 고부가가치 낸드 솔루션 제품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나타난 '비대면' 라이프스타일은 SSD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기름을 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데이터 사용량 폭증에 따른 서버용 SSD 수요 증가와 소비자들의 SSD 사용 확대는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택근무 확산도 SSD 시장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화상회의, 디자인, 데이터분석 등 업무를 집에서 수행하기 위한 업그레이드 수요뿐만 아니라 온라인 수업, 인터넷 쇼핑 등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올 상반기 전 세계 SSD 시장 규모는 147억8600만달러(약 17조5000억원), 하반기는 177억9400만달러로 추정된다.

SSD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게 컨트롤러다. SSD의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 기술이다. 예컨대 낸드플래시가 책을 꽂아놓는 서재라면 컨트롤러는 데이터를 언제 어디에 넣고 끄집어낼지를 결정하는 사서 같은 역할을 한다. 또 에러를 수정해주고, 수명을 연장해준다. 삼성전자가 낸드 세계 1위 뿐만 아니라 SSD 1위 자리(2019년 기준 세계 시장 점유율 30.5%)를 지키고 있는 것도 컨트롤러 경쟁력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초부터 컨트롤러 기술에 투자해 현재 1000명 이상의 전문 인력이 컨트롤러만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의 실책은 낸드플래시 시장 진출 초기 컨트롤러 등의 기술 개발에 조금 소홀했다는 것이다. 생산능력을 키우고 낸드플래시 단품의 기술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지만 솔루션 역량은 따라잡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1년엔 SK하이닉스의 컨트롤러 협력사인 이스라엘의 '아노빗'을 애플이 인수했다.


SK하이닉스가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10년대 들어서부턴 SK하이닉스도 솔루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SK그룹의 인수로 자금 동원에 여유가 생기면서 M&A 등에도 적극적이다. 2012년 6월 이탈리아 아이디어플래시, 미국 LAMD를 인수한 게 좋은 사례다. 2014년 5월엔 미국 바이올린메모리 PCle 부문을 인수했고 같은해 6월엔 벨라루스의 소프텍 펌웨어사업부를 샀다. 최근 일본 주식시장 상장 추진 소식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키옥시아(과거 도시바메모리)에 2017년 3조원대 지분투자를 결정한 것도 컨트롤러 기술 협력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평가된다. "낸드 솔루션 기술격차 많이 줄였다"...SSD 비중 50% 육박최근 SK하이닉스 안팎에선 삼성전자 등 선두 업체와의 낸드플래시 솔루션 기술 격차를 많이 줄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펌웨어와 컨트롤러 모두 SK하이닉스가 자체 개발한 제품을 판매하는데, 고객사로부터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 실적 관련 콘퍼런스콜(전화 실적설명회)에서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SSD의 출하 비중이 사상 처음 50%에 육박했다"고 밝혔다.

SSD 시장에서의 SK하이닉스 점유율도 조금씩 상승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15년 SSD 글로벌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2.52%였다. 2016년(3.33%), 2017년(3.65%), 2018년(4.72%), 2019년(3.92%) 등 해가 거듭할수록 점유율이 올라가고 있다. 올해는 SSD 점유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 경영진도 '낸드플래시 사업 경쟁력 향상'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 여기엔 사외이사들도 동참하고 있다. 지난 5월 25일 열린 ‘낸드플래시 반도체 경쟁력 강화 방안’을 주제로 한 경영진과 사외이사 워크숍이 좋은 사례다. CEO인 이석희 사장이 직접 임직원들을 만나 낸드와 솔루션 사업 역할을 강조하는 등 '역량 강화'에 힘쓰는 분위기가 조직 전체에 확대되고 있다. 이 사장은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직원 온라인 미팅에서 낸드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이 사장은 미팅에서 "2분기 낸드 사업 중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비중이 처음으로 50%에 달하는 등 많은 발전이 있었다"며 "앞으로도 데이터센터용 SSD 등 솔루션 제품 경쟁력을 더욱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 고객들로부터도 호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현 SK하이닉스 낸드 솔루션 담당은 최근 SK하이닉스 뉴스룸 인터뷰에서 "지난 6월말 기준 모바일 솔루션에 대한 글로벌 고객, 특히 중화권 고객의 올해 상반기 품질 평가는 업계 선두 수준을 달성했고, SSD 역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솔루션 개발 조직 내에서 전문가와 아키텍트(Architect) 제도를 확대해 SoC(System on Chip), 펌웨어, 검증 분야에서 각각 최고 수준의 전문가를 육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