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소비심리가 침체돼 있다. 유통회사 실적은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명품은 예외다. 보복소비, 대체소비 등 각종 수요가 몰리며 판매가 늘고 있다. 제품이 잘 팔리자 해외 명품 브랜드는 가격을 잇달아 인상하고 있다. 까르띠에, 피아제, 오메가, 태그호이어, 프레드 등이 다음달부터 일부 제품의 가격을 올린다. 가격을 올리기 전 사려는 수요가 몰려 더 잘 팔리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백화점 주요 상품군 매출은 대부분 감소했으나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가량 증가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된 신혼부부 등 젊은 층과 주식 호황으로 돈을 번 이들이 명품을 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명품 소비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포감을 느낄 때 고가의 재화를 소유하려는 심리가 커진다는 해석이다.
올 들어 백화점 명품 매출 20%↑28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까르띠에와 오메가, 프레드 등이 내달 1일부터 가격을 올리기로 한 데 이어 피아제, 태그호이어도 일부 제품 가격을 다음달 인상키로 했다. 티파니는 지난 25일부터 인기 제품 판매가를 4~8%가량 올렸다. 지난 6월 일부 제품가를 7~11%가량 올린 데 이어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인상이다. 올 들어 가격 인상을 결정한 브랜드만 샤넬, 고야드, 롤렉스, 루이비통, 셀린, 티파니, 디올, 페라가모 등 총 10여 개에 달한다.
명품업체는 예물 수요가 몰리는 봄과 가을에 제품 가격을 많이 올린다. 예물로 인기가 많은 까르띠에 ‘탱크 솔로’ 시계는 57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5.3% 오른다. 남성이 선호하는 시계인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300’ 제품은 현재 650만원에서 670만원으로 3.1% 인상된다. 커플링으로 인기가 많은 티파니 ‘밴드링’은 지난 24일까지만 해도 1890만원이던 제품이 25일부터 2090만원으로 200만원(11%) 올랐다.
가격 인상에도 명품은 ‘나홀로 호황’이다.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주요 백화점의 남성복, 여성복, 액세서리, 아동복 등은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해외 명품 브랜드 매출은 두 자릿수 이상 늘었다. 롯데백화점의 해외 명품 매출은 올초부터 지난 27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된 8월 들어서만 28% 늘었다. 같은 기간 여성복과 남성복 매출은 각각 23%, 13% 감소했다.
올 들어 이달 27일까지 현대백화점 명품 매출도 26% 증가했다. 영패션 매출은 13%, 아동복은 14%, 잡화는 12.3% 줄어든 것과 대조된다. 같은 기간 신세계백화점 명품 매출도 26% 늘었다. 베블런+보복소비+예물수요까지가격 인상에도 명품이 잘 팔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코로나19로 결혼식을 취소하거나 작은 결혼식으로 올릴 수밖에 없게 된 신혼부부가 명품을 사고 있다. 주식 호황으로 돈을 번 ‘동학개미’ ‘서학개미’도 명품 소비에 나섰다. 비싸질수록 갖고 싶어 하는 심리(베블런 효과),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심리가 갑자가 폭발하면서 나타난 보복소비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명품업체가 해마다 가격 인상에 나서자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샤테크(샤넬+재테크)’ ‘롤테크’ ‘까테크’란 신조어가 이를 보여준다.
코로나19가 명품 소비를 불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에 따르면 9·11 테러 직후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으나 보석, 시계, 스포츠카 등 명품 소비는 조기에 반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영현 SK증권 연구원은 “질병과 테러 등 신변 위협, 공포심에 노출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생명이 위협받으면 ‘자기애’가 강하게 발현되고 저축의 의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