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로 서울 집값 잡으면 어떨까

입력 2020-08-28 17:22
수정 2020-08-29 02:42
‘드디어 일산이 뜬다.’ 인터넷 부동산 카페가 경기 고양시 일산 얘기로 뜨겁다. 일산의 약점으로 꼽혀온 교통과 일자리 관련 대형 호재가 겹쳐 아파트 가격 상승 기대가 한껏 커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리뉴얼(재생)이 가시화될 것이란 얘기까지 더해져 집값이 꿈틀거리고 있다.


손바뀜도 활발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6월 일산동구와 일산서구 아파트 매매가 2789건에 달했다. 자료가 제공되기 시작한 2006년 1월 이후 가장 많다. 지난달 매매도 1852건으로 2006년 11월 후 최대를 기록했다.

1993년 일산 신도시가 생길 때 부모님을 따라 일산에 들어온 40대 A씨는 이런 분위기가 낯설다. 결혼 후 일산에 집을 마련했지만 늘 서울을 부러워해야 했다. “‘그때(일산에 집을 살 때) 좀 더 무리해서 서울로 갈걸’ 하는 후회가 항상 있죠. 이젠 서울은 넘볼 수 없어요.”

내 집이 있다는 데 만족하자고 생각을 고쳐봐도 서울 아파트 얘기만 들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희망을 품게 한다. 교통 호재가 반전의 계기였다.

경기 파주 운정~서울 삼성역 구간(42.6㎞)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노선의 공사가 탄력을 받으면서 킨텍스 주변 아파트 가격이 힘을 냈다. 내년 말 개통 예정인 대곡소사선이 들어오는 백마역 주변 집값도 강세다.

일자리 호재도 가세했다. CJ그룹이 일산동구 한류월드에 연간 2000만 명이 찾는 공연도시를 조성하기로 한 것. 직접 고용 5800여 명에 취업유발효과는 28만여 명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정치권에서 일산 등 1기 신도시 재생 주장이 나오는 점 역시 호재다. 1기 신도시들이 재건축 가능 연한인 30년을 맞고 있는 만큼 리뉴얼을 통해 스마트 도시로 탈바꿈시키자는 주장이다. 리뉴얼 비용 충당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어 공염불이 아니란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잇단 호재들에도 ‘이번 분위기 역시 반짝 상승세로 끝날 수 있다’는 신중론이 만만찮다. 일산 대형 아파트값이 한때 10억원을 넘기도 했지만 그 뒤로 줄곧 하향 곡선을 그려온 탓에 섣부른 기대를 경계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 “일산 살기 좋아요. 집값만 빼면 만족스러워요. 집 한 채가 재산의 대부분인데 갈수록 서울에 집 가진 사람들과 격차가 벌어지니 불안한 거죠. 서울 수준은 기대도 안 해요. 차이가 너무 벌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죠.”

아파트 시장은 ‘서울 대 비서울’ 양극화가 뚜렷하다. 서울 주택 공급이 부족할 테니 ‘인서울’이 정답이란 판단이 대세를 이루면서 너도나도 ‘서울로, 서울로…’를 꿈꾸게 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3기 신도시 카드를 내놨다. 1기 신도시와 서울 사이에 들어선다.

3기 신도시가 인서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신도시 아파트로는 서울 집값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그동안의 학습효과가 문제다. 게다가 앞으론 1주택으로 10년 이상 살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자금만 된다면 서울 말고 신도시를 선뜻 택할 사람이 더 없다.

해법은 1기 신도시에 집 갖는 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A씨 같은 사람들이 인서울 말고 지금 사는 곳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일산 부동산 시장이 교통 호재와 일자리 호재에 뜨겁게 반응하는 데서 보듯이 1기 신도시 인프라 개선이 관건이다. 여기에 리모델링을 포함한 리뉴얼이 가시화되면 1기 신도시가 인서울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렇게 1기 신도시를 살려야 다른 신도시도 잘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다. 국가가 조성한 신도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인식을 갖게 하자. 그래야 서울 집값도 잡힌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