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선 초년생이잖아요. 신인의 마음으로 천천히 가야죠.”
‘골프 여왕’ 박세리(43)의 툭툭 내뱉는 말투는 여전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한국 선수 최다승(25승), 후배 박인비(32)의 금메달 수확을 연출한 올림픽 골프 대표팀 감독까지. ‘승승장구’라는 표현이 잘 어울렸던 그가 최근 ‘쎄리팍’이라는 별명과 함께 TV까지 점령하며 연예계 최고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그를 잡기 위해 섭외 전쟁이 펼쳐지고, 얼마 전 메인으로 출연한 ‘노는 언니’는 여러 채널에서 판권 사들이기 경쟁까지 벌였다. 지난해는 교육콘텐츠 회사 바즈인터내셔널을 설립해 공동 최고경영자(CEO)로 일하고 있다.
28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생각해 놓은 여러 사업을 하려고 이것저것 준비했지만 영 쉽지 않다”며 “평소 신지 않던 하이힐을 신을 때도 있어 어색하지만 사회에선 ‘백돌이’인 만큼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고, 골프처럼 최대한 일을 즐기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즈인터내셔널은 그가 오랜 선수생활 내내 구상해온 ‘숙원 사업’이다. 전문적인 아카데미 시스템을 갖춰 유망주가 프로 선수로 성장하는 데까지 함께한다는 것이 회사의 목표. 프로 선수로 성장한 후에는 회사의 인프라를 통해 선수들에게 어울리는 후원사를 찾아주는 역할까지 한다. ‘골프 선구자’로서 느꼈던 고충을 후배들에겐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제가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스포츠 시장은 정말 체계적이죠. 반면 환경은 옛날이 더 여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선수층이 얇다 보니 조금만 두각을 나타내도 돕겠다는 후원사들이 있었거든요.” 다만 아직도 단순 매니지먼트가 많다는 건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그는 “선수들이 걱정 없이 오롯이 운동에만 전념하게 하려면 ‘토털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이런 케어 솔루션을 위해 미국 등 해외에 나갔지만 앞으로는 외국에서 ‘골프 강국’ 한국을 찾아올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해외에서 맹활약하는) 후배들 덕분”이라고 그는 말했다.
‘박세리 재단’은 유망주 발굴을 위해 그가 시작한 또 하나의 사업.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유망주가 걱정 없이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박세리는 “지난해 레전드매치 때 한국을 찾은 (안니카) 소렌스탐, (로레나) 오초아 등과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던 부분”이라며 “소렌스탐과 오초아 같은 세계적인 선수는 재단을 통해 유망주 골퍼를 돕고 있고, 나 역시 한국 유망주의 성장을 도와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가 후배를 위해 지난 6년간 꾸준히 열어 온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의 취소는 박세리 본인으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급격히 재확산하면서 스폰서인 OK저축은행, 주관을 맡은 KLPGA와 긴 상의 끝에 내린 결정이다. 대회는 다음달 18일 개막할 예정이었다. 박세리는 “후배들을 만날 수 있는 1년에 몇 안 되는 기회였는데 열지 못하게 돼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내년에는 꼭 가득 찬 관중, 후배와 함께 대회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