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 의혹 논란까지 일었던 조선시대의 ‘상소문’ 형식을 빌려 문재인 대통령에 직언하는 내용을 담은 청와대 국민청원글이 27일 공개로 전환된 후 하루 만에 20만 명 동의를 돌파했다.
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이날 오전 ‘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살펴주시옵소서’라는 제목의 청원은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지난 12일 올라온 후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사전검토 되느라 늑장 공개가 된 사실이 오히려 더 상소문의 내용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도움이 된 셈이다.
당초 1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청와대의 사전검토 후에 공개되는 절차가 있었지만 이 청원이 오랜 기간 비공개 상태로 남아있자 일각에서는 ‘정권에 불편한 내용이라 청와대가 일부러 숨긴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같은 사실이 우후죽순처럼 보도되며 국민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수만의 동의를 얻을 정도로 공감을 받았지만 검색을 해도 해당 청원이 보이지 않았으며 글을 보려면 주소(URL)를 직접 입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측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사전검토 중이었다고 설명했지만 논란이 된 당일 바로 공개로 전환됐다는 사실에 여론의 압박에 떠밀려 공개를 서두른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본인을 ‘조은산’이라고 밝힌 청원인이 조선 시대 상소문 형식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보낸 것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직면한 현재의 상황을 짚으면서 시작한다.
7개의 항목으로 된 청원글은 부동산 정책은 물론 세금, 외교 등 국내외 현안에 대한 심도있는 비판을 상소 형식으로 담고 있다.
아울러 '시무 7조 상소문'에는 '현미', '해찬', '미애' 등 현 정권 지도부의 이름이 숨겨져 있다는 점도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해당 청원의 7가지 주요 내용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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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세금을 감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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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감성보다 이성을 중히 여기시어 정책을 펼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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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명분보다 실리를 중히 여기시어 외교에 임하시옵소서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四.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시옵소서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五. 신하를 가려 쓰시옵소서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六. 헌법의 가치를 지키시옵소서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七. 스스로 먼저 일신(一新)하시옵소서
해당 청원 글로 주목받은 '진인(塵人) 조은산'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그는 28일 새벽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길고 지루한 넋두리에 불과한 글이 세상밖으로 나와 많은 관심과 응원의 말들과 함께 정당한 한 개의 동의를 받게 돼 벅찬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언론 인터뷰 이후 직접 자신의 글에 쏟아진 관심에 감사를 표한 것이다. 그는 전날 한국일보 인터뷰를 통해 '조은산'은 필명이고 인천에서 어린 두 자녀를 키우는 30대 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었던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것.
그는 "얕고 설익은 지식을 바탕으로 미천한 자가 써내려간 미천한 글이 이토록 큰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수고스럽게도 찾아가 동의를 해주신 많은 분들께 고개를 깊이 숙여 마음을 전한다"며 "'시무 7조'를 쓰며 꼭 써넣고 싶었던 문장이 있다"면서 "오천만의 백성은 곧 오천만의 세상과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서 ‘치킨계의 다주택자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을 규제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린 당사자이기도 하다.
한 시사평론가는 "박근혜 정권당시 경호원들이 심기경호만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국민들의 민심을 대통령에게 그대로 전해야 할 보좌진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비공개로 하면서 숨기려 든다면 이전 정권과 무엇이 다르냐"고 비판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