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저쪽을 보고싶네요.”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부산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 부회장이 준비된 동선으로 이동하지 않고 다른 라인으로 가버렸다. 임직원들은 당황했다. 애써 짜 놓은 동선이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통상 사업장을 방문한 총수나 최고경영자는 정해진 길로만 움직인다. 이 때문에 담당 임직원들이 사전에 동선을 준비하고 이에 맞춰 보고도 준비한다. 미흡한 점이 없도록 리허설을 반복한 후 비로소 총수를 맞는다.
그러나 이날 이 부회장은 준비되지 않은 생산라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력 제품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생산라인의 윗부분 뿐 아니라 아랫단까지 쪼그려 앉아 들여다 봤다. 품질을 점검하는 장비에도 직접 눈을 가져다 댔다. 안경을 벗은 뒤 부품을 가까이 살펴보기도 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내가 온다고 완벽하게 준비해놓은 모습이 아닌 평소의 생산시설 모습을 보고싶다"고 말했다. 현장경영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돌발행동을 했다는 얘기다. 그는 이날 삼성전기 사업장에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선두에 서서 혁신을 이끌어가지 못하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올 들어 계열사 사업장을 12차례 방문했을 정도로 현장경영에 적극적이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연구소를 시작으로 극자외선(EUV) 반도체 라인, 전장용 MLCC, 전기차 배터리 등 삼성의 신사업 현장을 두루 챙겼다.
이 부회장은 사내 직원들의 의견도 있는 그대로 듣고싶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과의 간담회를 회의실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진행하는 이유다.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간담회를 열면 자칫 직원들이 바짝 얼어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사내 워킹맘들과의 간담회에서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끌고 나가는 '소프트 리더십'을 보여줬다. 워킹맘들의 고충을 듣기위해 마련한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은 참석한 직원들에게 직접 손 세정제를 짜주며 긴장을 풀어줬다. 이후 이 부회장과 직원들은 쇼파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눴다.
삼성 관계자는 "간담회라고 하면 거창해보이지만 티미팅처럼 편안한 분위기였다"며 "직원들도 주저하지 않고 고충과 의견을 가감없이 얘기했다"고 전했다.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은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은 물론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바꾸자. 잘못된 것, 미흡한 것, 부족한 것을 과감히 고치자"고 말했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현장경영 일지>
1월 2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내 반도체 연구소 방문
1월 27일 삼성전자 브라질 마나우스 법인 방문
2월 2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극자외선(EUV) 라인 방문
3월 3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현장 경영
3월 19일 삼성전자 충남 아산사업장 현장 경영
3월 25일 수원 삼성종합기술원 방문
5월 13일 정의선 현대차 수석 부회장 미팅
5월 17일 중국 시안 반도체 현장 경영
6월 15일 삼성전자 DS, CE 부문 사장단 릴레이 간담회
6월 19일 화성사업장 반도체연구소 현장경영
6월 23일 수원 생활가전사업부 현장경영
6월 30일 세메스 천안사업장 현장경영
7월 6일 삼성전자 C-Lab 방문, 세트 사장단 간담회
7월 16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전장용 MLCC 생산현장 점검
7월 21일 정의선 현대차 수석 부회장 미팅
7월 30일 삼성전자 온양사업장 방문
8월 6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방문 (워킹맘 간담회)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