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비대칭’ 회사채시장 지원의 한계

입력 2020-08-27 12:57
수정 2020-08-27 12:59
≪이 기사는 08월27일(06:08)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재난지원금은 구제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그는 “생계나 실업에 대한 근심없이 ‘우리 회사는 이번주 재택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들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평안한 위치에 있는지…”라는 표현도 썼는데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공무원과 공기업, 대기업 직장인을 지칭한 듯합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대변한 윤 의원의 해당 발언은 가계뿐만 아니라 기업 지원 정책에도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와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가동 등 전례없는 대규모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많은 혜택이 대기업 중심의 회사채시장에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회사채시장은 지난 6월부터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국내 중소기업은 이 시장을 활용해 자금난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비대칭 성장 과정에서 참여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심해져 강소기업으로 불리는 중견기업조차 단지 ‘규모의 차이’ 탓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은 주로 은행을 우회하는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요.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지급 연기가 대표적이죠. 그 결과 예금은행의 중소기업(소상공인 포함) 원화대출은 올해 1~7월 무려 60조원이나 순증했습니다.

은행을 통한 자금 공급도 큰 도움을 줄 테지만, 문제는 회사채시장만큼 ‘돈이 효율적인 쪽으로 흘러들어가도록 하는’ 시장의 기능을 충분히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신용등급 또는 적정금리 같은 참고 지표도 턱없이 부족하고요. 정부 관점에선 ‘회생 가능성이 높지만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진’ 중소기업에 자금을 집중 공급할 수 있는 카드를 쓰기 어려운 셈이죠. 결국 정책 자금이 애먼 곳으로 흘러가 ‘구제’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

미국의 경우 한국과 달리 저신용 중견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하이일드(투자부적격 회사채) 펀드가 크게 활성화돼 있는데요.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에 원활하게 자금을 공급하는 동시에 투자자에겐 고위험 고수익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중견기업의 자금사정을 투자 수익률을 통해 ‘실시간’으로 읽는 유용한 지표 역할도 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저신용 중견, 중소기업은 어떤 처지에 놓여 있을까요. 우리는 하이일드펀드 활동이 매우 부진하지만, 다른 여러 지표로 짐작해볼 수는 있습니다. 일례로 법원통계월보를 보면 올해 1~7월 전국 법원에서 접수한 법인 파산 건수는 625건에 달했는데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4% 늘었고, 2018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5.5%나 급증했습니다. 아마도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은 여유 현금을 구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대다수 대기업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금융당국과 시장이 하이일드 펀드 육성에 힘썼다면 어땠을지, 전체 고용의 8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구제’가 절실한 상황에서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