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애플의 시가총액이 2조달러를 넘어섰다. 2018년 8월 상장사 최초로 ‘꿈의 시가총액’이라고 불리던 1조달러를 넘긴 뒤 2년 만에 다시 한 번 미국 기업 최초 기록을 남겼다. 2011년 스티브 잡스 사후 많은 사람이 애플의 미래를 비관했지만 불과 10여 년 만에 일곱 배 이상의 가치 성장을 일궈낸 셈이다. 이런 성과의 핵심에는 팀 쿡 최고경영자(CEO·사진)가 있다.
그동안 쿡은 관리형 리더로 알려져 왔다. 정확한 수요 예측과 원가 관리, 폭스콘으로 대변되는 아웃소싱 전략 등 잡스의 비전을 보좌해온 참모의 이미지가 그를 오래 따라다녔다. 그가 수십 년간 따라붙은 꼬리표를 떼어냈다. 지난해 3월 애플의 창업자인 잡스를 뛰어넘는 비전을 밝히면서다.
쿡은 애플이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하드웨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 서비스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잡스와 함께 애플의 혁신은 사라졌다는 혹평 속에서도 쿡은 애플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와 에어팟 등의 출시로 하드웨어 간 결속을 다졌다. 이어 이들 하드웨어 기기를 더욱 견고하게 묶어낼 수 있는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해 내는 데 성공했다. ‘애플의 상징’이라고 불린 잡스도 이뤄내지 못한 성과다.
이런 결과는 쿡이 애플이라는 기업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쿡은 애플을 기술과 예술, 사람에 대한 이해가 만나는 접점에서 일하는 기업이라고 규정했다. 구성원으로 하여금 모든 일의 중심에 기술이 아닌 사람을 두게끔 독려했다. 더 다양한 사람을 조직에 들이고, 생산적 갈등을 유도했다. 그가 애플 경영의 핵심 가치로 꼽은 포용성과 다양성은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쿡의 비전이 옳았다는 게 올해 증명됐다. 지난 1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하드웨어 매출이 크게 줄었음에도 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한 서비스가 애플의 전체 매출 상승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기존과 같이 하드웨어 혁신에 머물렀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행렬형 쐐기벌레라는 종이 있다. 이름대로 앞에 가는 벌레의 뒤를 줄지어 따르는 특성을 가진 종이다. 곤충학자 파브르에 따르면 행렬형 쐐기벌레들을 원형으로 배열하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앞만 쫓아 계속 원을 그리며 돌았다고 한다. 중간의 한 마리라도 방향을 바꿨으면 모두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업 경영도 이와 같다. 특히 성공 경험을 가진 기업은 더욱 그렇다. 조직에 매몰돼 기존 혁신을 반복하다 시장의 변화를 놓치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의 경영자는 업의 본질을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 내·외부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변화를 읽어 조직과 연결해야 한다.
전인표 < IGM세계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