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섭씨 18~30도, 습도는 30~70%에서 가장 잘 자랍니다. 생육기엔 질소, 열매를 맺을 땐 인과 칼륨 성분이 필요해요. 지하철역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기 때문에 빛만 있으면 오히려 지상보다 생육 조건이 좋아요.”
국내 최대 전시업체(메쎄이상)와 중견 철강업체(황금에스티·유에스티 등) 등을 계열사로 둔 ES그룹의 김종현 회장(59·사진)은 기자와 만나자마자 농업 이야기부터 꺼냈다. 26일 서울 상암동 ES그룹 회장실에서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다. 예상 밖이었다. 주요 계열사의 핵심 사업과 관련이 없는 데다 김 회장의 전공(한양대 기계공학과, 미국 조지아공대 석·박사)과도 거리가 있는 분야여서다.
5년 전 미국 뉴욕 출장이 김 회장을 ‘농업 마니아’로 바꿔놨다. “뉴욕에 가 보니 건물 옥상마다 농장을 만들어 놓고 무농약 채소를 재배해 팔고 있었어요. 그때 어렴풋이나마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엿보게 됐죠.” 김 회장은 이후 ‘농업 비즈니스’ 연구에 본격 나섰다. 미국, 네덜란드 등 농업 선진국을 10여 차례 다녀오고, 해외 농업 박람회를 매년 참관하면서 농업 사업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웬만한 농업 전공자에 버금가는 농업 지식을 쌓게 됐다.
농업을 공부하면서 ‘왜 한국은 농업 선진국이 되지 못했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김 회장은 “네덜란드는 국토 면적이 한국의 40%에 불과한데 농업 수출액은 연간 1100억달러로 한국의 15배가 넘는다”며 “한국도 네덜란드처럼 농업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네덜란드 농업의 강점으로 수경재배를 통한 생산성 극대화를 꼽았다. 그는 “한국에선 토마토 농사를 아무리 잘 지어도 ㎡당 35㎏ 이상을 생산하기 어려운데 네덜란드에선 수경재배로 평균 75㎏을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ES그룹이 지난해 스마트팜 기업 이노그린을 설립하고 농업에 뛰어든 데는 김 회장의 이런 의지가 반영됐다. 이노그린은 수경재배 방식으로 파프리카 바질 상추 등 10여 가지 채소를 재배한다. 수경재배 자체는 국내에도 이미 보급돼 있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부분 하드웨어만 갖췄을 뿐 작물과 생육 조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경재배를 하더라도 기온, 습도, 조도, 영양 등의 조건을 맞춰주지 못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가 없다”며 “화학, 생물학, 전기공학까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농업 강의에도 적극적이다.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경기 안산시 한국디지털미디어고에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교단에 서지 못했지만 지난해엔 한 학기에 열 차례, 20시간 수업했다. 정보기술(IT) 특성화고인 이 학교엔 1157㎡ 규모 농장도 있다. 학생들이 농장에서 키운 채소는 식당 식재료로 사용된다. IT 전공 학생에게 농업을 가르치는 것은 농업이 ‘종합 학문’이라는 김 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는 “농업은 이제 농부만 하는 일이 아니다”며 “농업에 과학과 공학 지식까지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FARM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