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이것은 정책인가, 정치인가

입력 2020-08-26 17:27
수정 2020-08-27 00:28
정상적인 경제 전문가라면 지금 우리 경제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낄 것이다.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이미 심각한 위기국면이었고, 이대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저성장, 고령화, 주력산업 노화, 4차 산업혁명 등 상수(常數)에다 코로나까지 덮쳐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다.

여야의 대표적인 경제통 의원들도 그런 점에선 견해가 일치하는 것 같다. 홍성국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수축사회》에서 우리 사회가 ‘구조적 전환기’에 처했고 이에 대처할 골든타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지적했다. 윤희숙 의원(미래통합당)도 《정책의 배신》에서 대대적인 전환이 요구되는데도 힘껏 버티는 ‘전환 저항기’라고 진단했다.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거스를 수 없는 ‘대전환의 시대’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나라가 쇠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국정을 책임진 정부라면 멀리 내다보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집단들을 설득해야 할 텐데 실상은 반대다. 어렵고 힘든 과제는 다 미뤄놓고, 당장의 현안에 치여 길을 잃은 모습이다. 대신 나랏돈을 펑펑 쓰며 표에는 동물적 감각을 지닌 점에선 확실히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보통 사람들’까지 그런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게 된 계기가 23번의 부동산 대책이다. 정책을 펴는 게 아니라 부동산으로 정치를 한다는 혐의가 점점 짙어지기 때문이다. 임대차보호 3법, 세금폭탄, 수도 이전 등 하나하나가 집주인과 세입자, 강남과 비강남,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두부 자르듯 갈라놓는다. 그러고도 보고 싶은 통계만 보며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니, 얼마 전까지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곧 나타난다”고 주문을 외던 이들이 떠오른다.

‘세금 정치’도 만만치 않다. 3년 만에 법인세 근로소득세 양도소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부자증세 5종 세트로 ‘거위털 뽑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런데도 비명이 크지 않았던 것은 ‘상대적 소수’를 타깃으로 삼은 탓이다. 다만 1주택자에게까지 약탈적 증세로 호주머니를 털다 사달이 났다. 조만간 국민 불만을 잠재울 2차 재난지원금 신공을 펼 것이다.

코로나 방역도 점점 정치화하고 있다. 반(反)정부 집회는 전수검사 대상이고 ‘방해 세력을 엄단하겠다’면서도, 친(親)정부 집회는 한참 지나서야 명단을 요구하는 수준이다. 공권력 집행도 선택적이고, 표현의 자유도 그때그때 다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고 뼈 때리는 지적을 해도 못 들은 척할 뿐이다.

코로나 2차 유행 와중에 공공의대 증원을 들고나와 첨예한 의료갈등을 유발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수 국민이 의사가 더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해도, 여론을 방패 삼아 방역과 의료 최전선을 혼란에 빠뜨린 것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총선 공약과 내년 예산 편성 일정에 쫓긴 듯한데, 이는 정책이 아니라 정치나 다름없다. 돌이켜 보면 숱한 부작용을 유발한 최저임금, 주 52시간 근로제, 탈원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도 결과적으로 ‘정책의 정치화’가 아니었나 싶다.

택시 미터기를 가린다고 과금이 멈추는 게 아니듯, 정책이 아닌 정치를 펴는데 뒤탈이 없을 리 만무하다. 근거 없는 낙관론자인 팡글로스(볼테르의 《캉디드》 속 인물)처럼 ‘다 잘될 거야’라고 아무리 주문을 외운들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를 직시하고 적극 대처해도 풀릴까 말까다. 반대의견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없이 전 정부 탓, 야당 탓, 언론 탓만 해선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럴수록 낮은 생산성과 비효율, 지대 추구, 과도한 갈등비용 등 산적한 난제들이 거대한 산처럼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군사전략가 허버트 맥매스터는 전쟁에서 무시했거나 간과했던 위험은 죽지 않는 뱀파이어처럼 언젠가 반드시 튀어나온다는 ‘뱀파이어의 오류’를 지적했다. 이는 비단 전쟁뿐 아니라 국정을 이끄는 정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전환기의 위기에 나라가 미아(迷兒)가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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