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여 영세업체 내달 '고용대란' 오나

입력 2020-08-26 16:57
수정 2020-08-27 01:45
“한마디로 기업이 죽고 난 뒤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주겠다는 꼴입니다.”

서울 중구 만리동에서 직원 10여 명 규모의 의류제조업을 운영하고 있는 A씨의 말이다.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직원 일부를 무급으로 쉬게 하려고 했다가 정부가 무급휴직 직원에게 평균임금의 50% 한도로 지원하는 ‘무급휴직·휴업 지원금’ 지원 요건을 알아보고 생각을 접었다. ‘지난 1년 동안 3개월 이상 유급휴직을 하고, 매출·생산량은 전월보다 30% 이상 감소했으며, 직원 절반을 30일 이상 더 쉬게 해야 한다’ 등 요건이 너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A씨는 26일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일일이 요건을 맞추다가는 그나마 유지해 온 사업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최근 여행, 항공, 관광 등 특별고용지원업종을 제외한 일반업종에 대해 ‘유급휴직·휴업 지원금’(일명 고용유지지원금)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다음달부터 고용 대란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유급휴직·휴업 지원금 종료 이후 무급으로 전환하더라도 무급휴직·휴업 지원금이 있어 고용 대란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무급휴직·휴업 지원금의 지원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일선 현장에선 ‘그림의 떡’이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사업주가 경영난에도 감원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휴업 수당(평균임금의 70% 이상)을 주면서 고용을 유지하면 정부가 인건비의 최대 90%(하루 상한 6만6000원)를 최장 6개월간 보전해주는 제도다. 당초 인건비 보전 비율은 기업 규모에 따라 50~67%였으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한시적으로 90%로 올렸다.

이날 기준으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기업은 총 7만7603곳이다. 이 가운데 특별고용지원업종 사업장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특별고용지원업종을 제외한 일반업종 중엔 상시 근로자 10인 미만 사업장이 6만 곳에 달해 정부 지원이 순차적으로 종료되는 9월 이후 고용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무급휴직·휴업 지원금은 수령 조건이 기존 고용유지지원금에 비해 까다롭다. 우선 무급휴직에 앞서 3개월 이상의 유급휴직이 선행돼야 한다. 휴업하려면 노동위원회의 별도 승인도 받아야 한다. 지난 3월 코로나19 확산 이후 유급휴직 조치를 하고 한두 달간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은 사업장이 무급휴직 지원금을 받으려면 다시 1~2개월의 유급휴직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사업주는 생산량이나 매출이 직전월에 비해 30% 이상 감소하거나 매출이 매달 20% 이상씩 감소한 ‘고용 조정이 불가피한 사유’도 입증해야 한다. 또 무급휴업 조건도 근로자 20인 미만 사업장은 10명 이상을 한 달 이상 쉬게 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휴직의 경우 해당 근로자를 90일 이상 쉬게 해야만 자격이 된다.

무급휴직·휴업 지원금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언제까지 민간기업의 인건비를 지원해줄 수는 없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