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월급으로 재난지원금?…정은경 본부장도 내놔야 하나요?

입력 2020-08-24 10:25
수정 2020-08-24 13:33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 후보로 21대 국회에 입성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지난 21일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공무원 임금을 삭감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조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 5월 1차 재난지원금 예산은 약 12조원"이라며 "비슷한 규모로 2차 재난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공무원 임금 삭감을 제안한다"고 했습니다. 다음달부터 연말까지 4개월 간 임금 20%씩 삭감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2조6000억원의 재원이 생긴다"고 조 의원은 주장했습니다. 본인과 의원실 직원도 월급을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조 의원은 이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더욱이 코로나 일선에서 고생하시는 많은 공직자가 있으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공동체가 조금씩 양보하고 희생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작은 정치권과 공공부문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왜냐하면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경험하는 힘듦과 세금을 쓰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힘듦의 차이가 갈수록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조 의원 페이스북에는 비판의 댓글이 적지 않습니다. 한 네티즌은 "일반 공무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데 그걸 삭감해서 마련하자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가족 중에 공무원이 단 한명도 없지만 이건 진짜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또다른 네티즌은 "지난주는 교대로 밤새우면서 민원처리하느라 주말에는 코로나 비상 근무하랴, 극심한 피로도로 목이 잠겨서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2차 재난지원금접수시작이 되면 의원님이 솔선수범하셔서 주민센터에 파견근무 좀 해달라"고 꼬집었습니다.

조 의원은 논란이 되자 "세부적인 계획을 만듦에 있어서 고위직과 박봉인 하위직 공무원들의 분담 정도에 차이를 두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한 이후 공무원의 월급 반납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난 4월 정부는 장·차관급 공무원의 월급 일부를 삭감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도 올해 임금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국가에 반납했습니다. 질병관리본부 등 일반 직원들도 연가보상비를 반납해야 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코로나 대응을 위해 힘쓴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의 연가보상비를 보장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전 국민 대상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또다시 논의되고 있습니다. 예산이 없어 빚을 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 월급까지 재원으로 쓰자는 주장입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공무원 월급 삭감'에 긍정적인 발언이 나왔습니다.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은 24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가적 위기 상황에 공무원이 고통 분담에 동참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는 말에 "그것도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그러나 그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 이건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당장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공무원 월급에 손을 대는 일은 다릅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월급 삭감'으로 갚는다면 어느 공무원이 위기 상황에서 국가에 헌신하려고 할까요? 공무원들의 헌신이 없는 한 코로나 사태 극복도 요원할 겁니다. "공무원의 월급을 삭감하자"는 국회의원의 선동적 주장이 코로나를 극복하는 데 보이지 않는 장애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