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적' 때리기로 전락한 민주당 전대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0-08-24 09:06
수정 2020-08-24 09:08


당 대선 후보 또는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대표적인 ‘정치 이벤트’로 꼽힌다. 경선 승부와 관계없이 당 전체로 봐선 국민들의 시선을 끌기에 이만한 기회를 찾기가 쉽지않다. 새로 선출된 지도부는 당을 어떻게 탈바꿈 시킬지 청사진도 내놓는다. 이 때문에 전당대회를 계기로 지지율 상승 효과를 기대한다. 이른바 ‘컨벤션 효과’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8·29 전당대회’는 이런 ‘컨벤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데는 몇가지 요인들이 있다. 당 관계자들과 후보들은 코로나19 사태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보통의 경우라면 후보들은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대대적인 유세전을 벌인다. 유세는 지방 도시 별 대규모 실내 체육관에서 진행된다. 당원 수천명이 모여 시끌벅적한 잔칫집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이번엔 코로나19 때문에 그런 행사를 갖지 못했다. 유세는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아무래도 체육관 유세 행사보다 관심을 갖기 어려운 조건이다. 더욱이 유력 대선 후보이자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낙연 후보가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2주 격리 중이어서 전당대회에 참가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데는 이런 외부 환경 보다 후보들이 자초한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당 발전을 위한 치열한 논쟁도 보이지 않는다. 당내 최대 세력인 친문(친문재인)표를 겨냥하고 여론의 시선을 잡기 위해 ‘더 센 발언 경쟁’에 치중하는 양상이다. 계파 구분없이 친문 구애를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비교적 온건하다고 평가받는 후보들도 강경 발언들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특히 후보 간 치열한 경쟁보다 연일 ‘외부의 적’을 표적 삼아 강성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외부의 적’은 정권 실세 수사로 여권과 갈등을 빚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광화문 집회, 전광훈 목사가 대표적이다. 반면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일파 결탁’발언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원웅 광복회장을 두둔하면서 친일 이슈를 부각시키는데 한결같이 앞장섰다.

최고위원에 도전한 노웅래 후보는 “무소불위 기득권만 지키려는 정치검찰 결단코 척결하겠다”고 했고, 이원욱 후보는 윤 총장을 향해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라며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검찰개혁을 완수해야 한다”고 했다. 이 후보는 광복절 광화문 집회를 허용한 판사에 대해 ‘판새(판사새X)’라고 표현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표 경선에 나선 이낙연 후보는 김원웅 회장에 대해 “친일 잔재 청산을 충분히 못한 채로 지금까지 왔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 아닌가”라며 “광복회장으로서는 그런 정도의 문제의식은 말할 수 있다”고 두둔했다.

당내 온건파에 속하는 모 후보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오프(비보도)’ 또는 익명 조건으로 속내를 털어놓은 것과 공개적인 발언이 큰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 “정부가 재개발·재건축 이익 90%를 환수하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선 도심 필요한 곳에 공급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개 발언에선 정부의 ‘재개발·재건축 이익 90% 환수’방침을 적극 지지한다고 했다. 역시 당내 강경 지지층을 의식한 것이다.

경선 후보들이 친문을 비롯한 강성 당원들 마음 잡기 경쟁에 나선 것은 경선 규칙 때문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경선 규칙엔 당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일반 당원 5%, 일반 국민 10% 비중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토록 하고 있다. 90%가 당원들 표로 할당하다보니 민심을 반영하기 어렵다. 당심과 민심이 괴리되는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전대가 흥행은커녕 관심과 비전, 후보 간 논쟁이 없는 ‘3무(無) 경선’이라는 혹평을 듣는데 대해 당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응천 의원은 “(전대가)국민적 ‘관심’이 떨어지니 우리들만의 리그가 되고, 그러니 ‘논쟁’이 없다. 논쟁이 없으니 차별성이 없고 비전 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며 “이름만 가려놓으면 누구 주장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초록동색’인 주장들만 넘쳐나고 있다. 이래도 되는가”라고 비판했다. 또 “(후보들이) 몇몇 (여권) 주류 성향의 유튜브, 팟캐스트에는 못 나가서 안달들”이라고 했다.

당내에선 맥 빠진 전대 이후를 걱정하는 의원들도 있다. 수도권 재선의 한 의원은 “만약 ‘어대낙(어짜피 대세는 이낙연)’대로 된다면 임기 7개월 밖에 안되는 대표가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한 장기 플랜을 짜기 힘들게 되고, 다른 후보가 된다면 강성 지지층에 휘둘려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