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동통신사에 아이폰 수리비와 광고비를 떠넘기는 등 ‘갑질’을 한 애플코리아가 자진시정안을 내놨다. 1000억원을 들여 중소기업 연구개발(R&D)과 취약계층 정보기술(IT) 교육 등을 지원하고, 소비자들의 아이폰 수리비를 10% 깎아주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절차 등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번 시정안은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를 거친 뒤 나온 것이라 사실상 확정된 방안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1000억원에 애플에 면죄부를 준 것”이란 비판이 거세다. 자진시정안 내놓은 애플코리아
공정위는 애플과 협의를 거쳐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한 잠정 동의의결안을 마련했다고 24일 발표했다. 동의의결은 법을 어긴 기업이 피해보상 등 내용을 담은 자진시정안을 내놓고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면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애플은 2009년 아이폰3GS를 한국에 출시한 뒤 한국 통신사에 TV·옥외 등 광고비와 매장 내 진열비, 수리비 등을 떠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보조금 지급과 광고 등에 간섭해온 혐의도 있다.
공정위는 2016년 6월 애플에 대한 첫 현장조사에 들어가 2018년 4월 법 위반 혐의를 담은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에 해당)를 애플에 보냈고, 2018년 12월과 지난해 1, 3월 등 세 차례 전원회의를 열어 사건을 심의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동의의결 방식으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있다.
애플은 자진시정안에서 750억원을 들여 중소기업 R&D(400억원)와 IT 교육(350억원)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250억원을 들여 아이폰 사용자의 수리 비용을 10% 깎아주고 애플의 유상 보증 서비스인 애플케어 가격은 10% 할인하기로 했다. 수리비용 및 애플케어 할인은 250억원의 재원이 소진될 때까지 적용한다. 애플은 광고비·수리비 떠넘기기 등 그간 문제가 된 불공정 조항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시정안에 담았다. 업계에선 ‘면죄부 줬다’ 비판 많아공정위는 오는 10월까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한 뒤 잠정안을 심의해 의결할 계획이다. 동의의결이 확정되면 애플은 수백억원대의 과징금을 피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시정안은 애플과 공정위가 협의를 거쳐 마련한 것임을 감안할 때 확정된 방안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1000억원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애플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광고비 떠넘기기와 관련해서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사전 협의를 거친다’고만 돼 있는 등 구체적이지 않은 내용이 많다”며 “애플이 이해관계자인 통신사에도 내용과 사업안 등을 자세히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애플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수십만 명의 앱 개발자와 협력업체 등을 통해 한국에 기여해온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부인하고 자진시정안을 ‘한국에 대한 기여’로 포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5년 조사한 한화는 ‘무혐의’이날 공정위는 지난 5년간 조사한 한화그룹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한화그룹이 계열사를 동원해 한화S&C에 일감과 이익을 몰아줘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를 잡고 2015년부터 여섯 차례의 현장조사 등 집중 조사를 벌였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공정위 전원회의는 한화 계열사들이 한화S&C의 서비스를 구매하면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을 줬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총수 일가나 그룹 차원의 지시로 구매가 이뤄졌다는 증거도 불충분하다고 봤다.
공정위는 최근 굵직한 기업 사건들에 유화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다. 지난 5월 검찰에 고발될 것으로 예상됐던 미래에셋그룹에 과징금 부과 처분만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김상조 전 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 재임 시절 검찰 고발을 남발했다가 기소율이 뚝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신중한 태도로 전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수영/이승우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