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는 세금도 교묘히 정치적 수단으로 쓸 줄 아는 치밀함이 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고강도 증세를 하면서도 이렇다 할 조세저항이 없다. 비결이 뭘까.
이 정부 출범 이후 세율이 오르지 않은 세목은 찾기 힘들다.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 국세는 물론 재산세 취득세 등 지방세도 모조리 올랐다.
정권을 잡은 2017년 첫해 곧바로 법인세 최고구간 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고, 근로소득세 세율도 3억원 초과구간을 별도로 쪼개 40%에서 42%로 상향조정했다. 이것도 부족해 올해 세제개편에선 소득세 최고구간(10억원 초과)을 하나 더 신설해 45%로 다시 올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세율 평균인 35.7%보다 9%포인트 이상 높다. 종부세와 재산세 취득세 양도세 역시 세율이 크게 올라 다주택 보유자뿐 아니라 1주택자여도 고가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겐 부담이 매우 커졌다.
이렇게 올린 세금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대기업과 개인 고소득자 및 고액자산가들에게 증세 영향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올해 세법개정안 발표자료 맨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아예 노골적으로 숫자를 구분해놨다. 이번 세제개편에 따른 세부담 귀착효과를 분석해놓은 수치인데, 고소득자·대기업은 1조8760억원의 세부담이 늘어나는 반면, 서민·중소기업은 1조7688억원가량 줄어든다는 것이다.
부자들한테 세금을 더 걷어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정의로운 세금’을 정부가 실천하고 있다는 걸 대놓고 자랑하는 것 같다. 이름하여 ‘로빈후드 증세’다.
올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린 것에 대해 홍남기 부총리가 한 말은 정부의 세금철학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영향을 받는 분들은 상위 0.05%만 해당됩니다. 1만 명이 약간 넘는 숫자고요. 세 부담은 1조원이 좀 안 될 것입니다. 세율을 올렸습니다만 제한적인 최고위층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강조드립니다.”
다시 말해 전체 납세자 2000만 명 중 극소수에게 세금을 더 받아내는 것이니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 같다. 마치 상위 0.05%에 속하는 1만 명은 기본권이고 뭐고 무시해도 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한마디로 무서운 발상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보편증세를 시도했던 주식양도차익 과세 역시 다수 서민의 반발 움직임이 일자 대통령이 나서 과세 기준을 크게 완화했다. 전방위 증세에 나서면서도 이렇다 할 조세저항이 없는 이유는 이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정답이 나왔다.
‘편가르기 증세’를 하는 과정에서 조세원칙이란 건 송두리째 사라지고 없다. 조세당국 스스로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을 가장 큰 원칙으로 내세우지만, 실질은 거꾸로다. 봉급자 40% 가까이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비정상을 정상화할 생각은 애당초 없다. ‘보유세는 높이되, 거래세는 낮춘다’는 부동산 세제 원칙도 온데간데없다. 보유세(종부세 재산세)를 올려 집을 팔라고 종용하면서도, 거래세(취득세 양도세)까지 올려 퇴로를 막는 모순된 세제를 내놓는 정부다.
1990년대 이후 일관되게 추진해오던 ‘과세체계 효율화’ 원칙도 사라졌다. 과세구간은 단순할수록 선진적이다. 근로소득세의 경우 이 정부 들어 과세구간이 4단계에서 6단계로 두 단계나 늘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소득세율 구간을 3~4단계로 단순화하는 추세와 역행한다.
보편 증세가 아닌,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한 포퓰리즘 증세는 필연적으로 세수부족을 낳는다. 민심을 얻는 효과는 있지만, 실질 세수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급증하는 복지수요와 악화되는 재정을 감당하려면 언젠가는 보편 증세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러자면 조세저항이 들불처럼 번질 텐데, ‘우리 때만 아니면 된다(Not In My Term)’, 이 정부는 님트(NIMT) 정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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