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값 급등에도…이마트 배추, 도매가보다 싼 비결은

입력 2020-08-23 18:08
수정 2020-08-24 14:13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배추 한 통의 가격은 5980원(이하 22일 기준)이다. 농협 가격(6400원)은 물론 가락동 농산물 시장의 도매가격(약 6090원)보다도 싸다. 긴 장마와 폭염으로 채소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초저가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지를 다변화하고, 오랜 기간 신뢰를 구축하는 등 그간 축적해온 전략적인 노하우가 경쟁력이 됐다.

농협과 비교하면 ‘절박함의 차이’란 분석도 있다. 농협유통은 재난지원금 구입처로 지정돼 올 상반기 대규모 흑자를 냈다. 이에 비해 이마트는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7% 급감했다. 실적을 끌어올려야 하는 이마트가 더 발빠르게 가격 대응에 나선 것이다. 계속되는 채소류 가격 상승 금(金)배추 파동은 장마와 폭염이 겹치는 해의 단골 뉴스였다. 밭이 빗물에 쓸려나가면서 공급량이 급감하는 데다 비가 그친 뒤엔 폭염으로 배추가 물러지면서 품질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상황이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달 배추 출하량이 전년 대비 18%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공급량 부족은 곧바로 도매시장 가격에 반영됐다. 지난 3일 10㎏망 기준으로 8187원이던 배추값은 22일 1만2599원으로 53.89% 상승했다. 한 포기 가격으로 환산하면 대략 6000~7000원 수준이다. 애호박은 20개 기준으로 같은 기간 132.78% 올랐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이마트를 비롯한 대형마트들은 소매가 상승을 막기 위한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엽채류 바이어들은 신발부터 바꿨다. 평소라면 구두를 신고 회사로 출근하지만 최근 등산화로 갈아 신고 산지 생활을 택했다.

변재민 이마트 배추 바이어는 고랭지 배추의 주거래처인 태백, 평창만으로는 물량이 부족할 것으로 판단했다. 해발고도가 더 높은 대관령, 진부령에 올랐다. 비 피해가 적은 곳을 찾아 해발 1000m 높이의 강릉 왕산 지역까지 올라가 매입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마트는 애호박 직매입처도 기존 2곳에서 6곳으로 늘렸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마트는 이달 20일 배추 1통의 도매가격이 8000원까지 치솟았을 때도 매장에서 5980원에 팔았다. 할인점 경쟁은 소비자에게 혜택이마트의 위기 대응력은 농협 하나로마트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배추, 무, 감자, 풋고추 등 주요 농산물을 기준으로 이마트가 더 낮은 가격에 판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기준으로 배추의 경우 농협 e-하나로마트는 1통에 6400원에 판매 중이다. 이마트보다 420원 비싸다. 무, 감자, 풋고추 가격도 하나로마트가 각각 100원, 47원, 400원 더 높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민간 대형마트의 신선식품 매입 경쟁력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농협 하나로마트는 계통 출하 방식으로 물건을 공급받아 비상시 대응력이 떨어진다. 농가에서 지역 단위 농협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면, 하나로마트는 지역 농협에서 이를 받아 판매하는 방식이다. 중간 유통 단계를 획기적으로 줄이긴 했지만 산지 다변화라는 측면에선 이마트 등 민간 할인점에 비해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마트는 배추 등 일부 신선식품의 자사 마진율을 평소 대비 10% 수준으로 대폭 줄였다. 산지 농가를 잡기 위해 일괄 현금 매입을 진행하기도 했다.

박동휘/김기만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