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우주의 원더키디'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1989년 KBS를 통해 방영된 작품으로 인류가 태양계를 넘어 우주 곳곳을 탐사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는 2020년이 배경이다.
화성도 제대로 탐사하지 못하고, 달 식민지 건설은 계획도 나와 있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만화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허황된 이야기다. 하지만 1989년으로 돌아가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이 쏘아진지 12년만에 달 착륙에 성공했다.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던 우주 탐사 계획을 지켜보며 막연히 '30년 후면 태양계 바깥으로 인류가 항해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우주 기술에 대한 낙관론이 충만했던 탓이다. 이처럼 모든 시대는 특정 기술에 대해 그 시대만의 장밋빛 희망을 가진다. 2020년 현재 이같은 낙관론이 높은 분야는 인공지능(AI) 분야다. AI 만능론의 근거글로벌 컨설팅업체인 pwc는 2030년까지 AI 분야에서 16조달러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딜로이트가 예상한 수치는 13조달러다. 2018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13조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중국 크기의 경제 영역이 앞으로 10년 내에 추가된다는 의미다.
AI는 2016년 구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통해 딥러닝, 머신러닝 등의 단어가 일반화되며 일반인들에게도 깊게 각인됐다. 휴대폰의 안면인식 잠금해제, 유튜브 등의 사용자 최적화 영상 추천 등을 통해 일상생활에도 들어왔다. 앞으로 어떤 직업이 AI에 의해 대체될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하지만 이같은 기대감이 조만간 허물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의 'AI의 한계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고 있다(an understanding of AI's limitations is starting to sink in)'이라는 기사다.
이 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는 AI의 기대감이 한창 높은 현재를 'AI의 여름'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AI와 관련된 회의론이 점점 높아지며 'AI의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지금의 AI붐을 이끈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든다. △수만개의 사례를 비교해 컴퓨터의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딥러닝 등 알고리즘의 발달 △이같은 알고리즘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컴퓨터 및 반도체 등 하드웨어의 발달 △알고리즘에서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사회 전반의 디지털화 등이다. 데이터와 하드웨어의 한계하지만 이같은 조건들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거꾸로 살펴보자. 우선 사회 디지털화를 통한 데이터 확보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최근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 추적 과정이 단적인 예다. 거의 대부분의 거래가 신용카드 기록에 남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90%를 넘었지만 실제 동선 추적은 면접 조사 등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뤄진다.
매일 상당량의 데이터가 생성되고 있지만 개별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는 데이터를 찾고, 구조화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뉴딜의 주요 정책인 '데이터 댐'과 관련된 관련 부처 실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데이터가 많이 생성되고 있지만 쓸만한 데이터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려는 기업이나 개인은 극소수다. 결국 데이터댐을 통해 AI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질이 낮거나 쓸모가 없을 수 밖에 없다. 단순히 모아 놓는 데이터가 늘어난다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두번째 한계인 하드웨어의 문제를 살펴보자. 2016년 알파고는 200개에 이르는 CPU(중앙처리장치)와 176개의 GPU(영상처리장치), 920테라바이트의 메모리 저장장치를 사용했다. 여기에 들어가는 전력인 12GW(기가와트). 국내 LNG 발전소에서 한시간동안 생산하는 전체 전력(2019년 기준 11만1705GW)와 맞먹는다.
이같은 거대한 컴퓨팅 설비와 소비전력은 그 자체로 AI의 보급을 발목 잡는다. 하지만 하드웨어의 발전은 한계를 맞은지 오래다. 2년마다 반도체 집적도가 2배씩 높아진다는 무어의 법칙이 2010년대 들어 깨진 것이 단적인 예다.
반도체 집적도가 10나노미터대로 떨어지면서 집적도를 높이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뉴로모픽 등 근본적인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이상 이같은 하드웨어 성능의 한계는 AI의 발전도 발목 잡을 것이다. 세번째 'AI의 겨울' 올까하지만 이코노미스트가 AI의 근본적인 한계로 지적한 것은 알고리즘에 있다. 알파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과 같이 지금의 AI는 수천개에서 수백만개의 기존 사례를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고도화된다.
딥러닝이나 머신러닝으로 불리는 기술이다. 과거에는 프로그래머가 고양이의 특징을 일일이 정의하면 컴퓨터는 여기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고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딥러닝 알고리즘에서는 수만장의 고양이 사진을 AI가 학습하며 스스로 고양이에 가까운 이미지를 인식해 나간다.
하지만 이같은 능력은 냉정히 말해 우리가 말하는 지성을 구성하는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특정한 대상을 사람보다 빨리 인식하고 분류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이 자체만 갖고 지능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AI와 관련해 정의되지 못한 문제에 취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코노미스트는 다른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한 이같은 문제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자율주행차 등 AI를 활용한 주요 기술들은 그만큼 도입되는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주요 직업을 대체하거나 중국 경제 규모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새롭게 창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AI의 가을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50년대와 1980년대에도 한 차례씩 AI는 여름을 맞고, 가을과 겨울을 차례로 거쳤다. 특히 컴퓨터가 처음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1950년대에는 "1970년 이전에 인간 정도의 사고를 하는 AI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아는 바와 같다. 이는 실망감으로 이어져 AI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대폭 줄어드는 'AI의 겨울'로 이어졌다. 특정 기술의 가을은 성숙을 의미할 수도
모든 기술은 가을을 맞는다. 1997년 2월 줄기세포를 통해 복제양 돌리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조만간 인간 복제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해 10월 독일 잡지 슈피겔의 표지는 이같은 기대감과 우려를 동시에 보여준다.
꼭 인간 복제가 아니더라도 의학 분야에서 중요한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뤘다. 2010년 이전에 신경세포 재생 기술이 개발되며 하반신 마비와 실명 등 각종 장애가 완전히 극복될 것이라는 관측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이같은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하지만 줄기세포로 상징되는 각종 바이오 기술들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보듯 관련 분야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새로 소개되는 기술들은 초기에는 '할 수 있거나 미래에 가능한 부분'을 중심으로 소개된다. 듣고 있으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 줄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할 수 없는 부분'이 차츰 모습을 드러낸다. 이 시점에 해당 기술에 대한 기대감은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이는 인류가 새로운 기술을 알아가면서 거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AI도 마찬가지다. 'AI의 가을'이 AI에 대한 기대감은 떨어뜨리더라도 더 깊은 이해로 이어져 결국 AI의 저변을 넓히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